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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남긴 건 쓰레기뿐"... 팍팍한 세상, 이웃 손길에 다시 힘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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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남긴 건 쓰레기뿐"... 팍팍한 세상, 이웃 손길에 다시 힘낸다

입력
2022.08.13 04:0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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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 오물 냄새로 고통… 온몸 금새 땀으로
악취가 집 안에 밴 탓에 벽지까지 모두 폐기
"2시간 동안 트럭으로 4대 채워"... 분량 엄청
상류 방류로 한강 쓰레기는 아직 수거 못해

12일 오후 서울 관악구 조원동 골목에 침수 피해를 입은 가구에서 내놓은 옷 더미가 수북이 쌓여 있다. 원다라 기자

12일 오후 서울 관악구 조원동 골목에 침수 피해를 입은 가구에서 내놓은 옷 더미가 수북이 쌓여 있다. 원다라 기자

“30분마다 숨 한 번 쉬고 다시 들어가 일하고 있습니다. 음식물 썩는 냄새에 배수구에서 올라온 오물 냄새까지 더해지니 고통스럽네요.”

12일 오전 11시 수해 폐기물 수거가 한창인 서울 관악구 조원동 골목 한 빌라 앞에서 휴식을 취하던 작업자 임병삼(58)씨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손사래부터 쳤다. 그는 “벽지까지 죄다 제거하고 있다”고 했다. 집 안을 들여다보니 천장에서 30㎝ 위치까지 차오른 빗물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오물이 섞인 빗물이 내부 집기를 전부 집어삼켜 냄새가 밴 탓에 쓸 만한 게 남아나질 않았다는 설명이었다.

임씨의 말처럼 길가에는 가전제품, 가구, 옷더미는 물론 벽지, 전등 등 내부 마감재까지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한 50대 주민은 볕에 작업화와 작업복을 말리는 중이었다. 그는 “이것도 버리고 싶은데, 일을 나가야 해 어쩔 수 없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12일 오후 서울 관악구 조원동 골목에서 환경공무관들이 수해 폐기물을 트럭에 싣고 있다. 원다라 기자

12일 오후 서울 관악구 조원동 골목에서 환경공무관들이 수해 폐기물을 트럭에 싣고 있다. 원다라 기자

폭우가 남긴 건 쓰레기밖에 없었다. 폐기물 수거 절차는 단순하다. 구청에서 일감을 할당하고 인부와 군인들이 집 안 물건을 꺼내 골목에 내놓으면 환경미화원들이 실어 나르면 끝난다. 그러나 장애물은 한둘이 아니었다. 비가 그친 뒤 찾아온 32도 무더위로 온몸은 금세 땀으로 범벅됐다. 물에 휩쓸려 날카롭게 부서진 집기들을 옮기느라 평소보다 시간도 배로 들었다. 감전 사고 역시 조심해야 한다. 전날에 이어 이날 오전 7시부터 폐기물을 실어 나른 특전사 국제평화지원단 소속 이경준 중사는 “유리 조각이나 깨진 물건 조작에 손을 다칠 수 있어 장갑을 두 개씩 끼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을 흠뻑 먹은 폐기물은 무게도 만만치 않다. 관악구 김춘권 환경공무관은 “옷가지며 종이며 모두 물을 먹어 힘을 훨씬 더 써야 한다”고 토로했다.

특전사 국제평화지원단 소속 군인이 12일 오후 서울 관악구 조원동에서 수해 폐기물을 수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특전사 국제평화지원단 소속 군인이 12일 오후 서울 관악구 조원동에서 수해 폐기물을 수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엄청난 쓰레기 양에 소형 포클레인까지 동원됐다. 포클레인 기사 박상규씨는 “작업을 시작한 지 두 시간 만에 2.5톤 트럭 네 대를 채워 보냈다”면서 “이런 수해 현장은 처음”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박씨가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폐기물을 가득 실은 트럭과 대기 중인 트럭이 쉴 새 없이 교대했다.

12일 오후 서울 관악구 조원동 골목에 부서진 유리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원다라 기자

12일 오후 서울 관악구 조원동 골목에 부서진 유리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원다라 기자

대부분의 주민이 절망에 빠져 있지만, 자원봉사자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할 때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다. 관악구에 30년 동안 살며 세 번째 수해를 당했다는 김선심(76)씨는 수박을 사와 군인들에게 대접했다. 겨우 건진 그릇 몇 개에 정성스럽게 썬 수박을 촘촘히 담았다. 집 안 바닥에 고인 물을 퍼내고 있던 조동춘(75)씨는 “군인들이 없었으면 이 많은 세간을 어떻게 들어냈을지 아찔하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 주민 김선심씨가 12일 진흙 범벅인 그릇을 씻고 있다. 원다라 기자

서울 관악구 주민 김선심씨가 12일 진흙 범벅인 그릇을 씻고 있다. 원다라 기자

이날 오후 쓰레기 트럭을 따라가보니 신대방동 ‘관악구 클린센터’ 앞에 20여 대가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여기서 쓰레기를 분류해 가전제품은 성동구 도시금속회수센터로, 그 외 폐기물은 인천 서구 수도권매립지로 옮긴다. 서울시는 관악구 4,000톤을 포함해 시내에서 발생한 8,200톤의 폭우 폐기물을 이곳으로 보낼 계획이다. 수도권매립지 관계자는 “가전제품을 뺀 나머지 폐기물은 시간차를 두고 매립지로 반입된다”고 설명했다.

12일 오후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관악구 클린센터 앞에 수해 폐기물을 실은 차량이 줄지어 서 있다. 배우한 기자

12일 오후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관악구 클린센터 앞에 수해 폐기물을 실은 차량이 줄지어 서 있다. 배우한 기자

하지만 주택 폐기물만 이 정도다. 한강 쓰레기는 아직 수거에 나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상류에서 계속 물을 방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팔당댐 방류량이 3,000톤 이하로 떨어져야 배를 띄울 수 있다”면서 “현재는 11개 한강공원 각 센터가 조금씩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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