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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나오는 미국의 "대만 군사 개입" 근거는 있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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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나오는 미국의 "대만 군사 개입" 근거는 있다? 없다?

입력
2022.05.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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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 속 "대만 유사시 군사개입"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발언 벌써 세 번째
1979년 대만과 단교 후 '대만관계법' 제정
"대만 안보 위협 시 방위 물자·서비스 지원"
"대통령·의회 적절한 조치 결정할 의무" 명시
단교 전엔 상호방위조약 맺어
대만해협 위기 땐 핵무기 사용도 검토

일본을 방문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3일 도쿄 아카사카의 영빈관에서 열린 미일 양자 정상회담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군사 개입을 할 것인가?"(기자)

"그렇다. 그것이 우리의 약속이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한국에 이어 일본을 방문 중이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3일 미일정상회담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이처럼 대만 유사시 군사력을 투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죠. 이 발언이 논란이 일자 백악관은 "대통령은 미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과 대만의 평화와 안정성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해명하며 진화했습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의 대만 군사개입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①지난해 8월 ABC인터뷰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조약 5조에 명시된 '집단방위'를 거론하며 유사시 대만에 군사 개입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해 논란이 일었고, 같은 해 10월 CNN 타운홀 행사에서도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방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 우린 그렇게 해야 할 약속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당시에도 백악관과 미국 정부는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변화가 없다"며 뒷수습했죠.

벌써 세 번째인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갈수록 격화하는 미중 갈등 속에서 나온,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해석되고 있죠. G2라 불리는 두 강대국의 군사적 충돌 시 그 피해를 짐작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클 것이기에 군사 충돌 가능성을 낮게 보지만, 끊임없이 중국에 '도발하지 말라'는 취지로 경고하고, 압박하려는 겁니다.

그렇다고 세 차례나 이어진 그의 군사개입 발언이 뚱딴지 같은 허무맹랑한 얘기도 아닙니다. 법적으로, 또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전혀 근거가 없지 않으니까요.

우선 바이든 대통령의 대만 군사개입 발언은 미국이 1979년 제정한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 Act)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만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언급되는 이 법에는 "타이완 주민의 안보 혹은 사회적, 경제적 시스템을 위협하는 어떠한 힘의 사용이나 기타 형태의 강압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미국의 전투능력을 유지한다", "미국은 대만이 충분한 자위 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방위 물자와 서비스를 제공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대만에 안보를 위협할 일이 생길 경우 미국이 뒤를 봐줄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 법에 담겨 있는 겁니다.

특히 "타이완 주민의 안보 혹은 사회적, 경제적 시스템에 발생한 위협과 관련하여, 미국 대통령과 의회는 그러한 위협에 대응하는 적절한 조치를 헌법 절차에 따라 결정할 의무가 있다"는 조항도 있습니다. 필요시에 대통령이 결정하면 자국 법에 따라 얼마든지 군사 개입도 가능하도록 법률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군사개입을 "우리의 약속"이라고 표현한 것도 대만관계법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됩니다.


중국의 유엔 가입 편든 미국, '대만관계법'으로 준군사동맹

1971년 10월 25일 유엔총회 중국 대표권 표결에서 유엔 가입이 확정되자 환호하는 중국 대표단(아래)과 침통한 표정의 대만 대표단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만관계법이 만들어진 데는 사연이 있습니다.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이 대립하던 1969년 미국이 냉전체제를 청산하자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합니다. 1971년 4월에는 탁구 경기를 매개로 교류를 넓혀 나가는 '핑퐁외교'로 중국과 화해의 물꼬를 틉니다. 미국이 거대한 인구를 보유한 중국 시장의 잠재력을 보고 '실리외교'로 무게 중심을 옮긴 거죠.

그 연장선에서 같은 해 10월 유엔 총회에서 중요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중국의 유엔 가입이 승인되면서 대만을 밀어내고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꿰찬 겁니다. 1945년 유엔 창립 당시 2차 세계대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과 함께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었던 중화민국(대만)이 국제무대에서 국가로서의 국제법적 지위를 사실상 박탈당한 것이기도 하죠.

유엔의 중국 대표권 문제는 중국 본토에서 벌어진 국공내전에서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을 타이완(대만)으로 몰아내고 승리한 공산당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을 건국한 직후부터 논란거리였는데요. 미국과 서방의 반대로 유엔 회원국과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지켜왔던 대만은, 중국과 가까워진 미국이 등을 돌리면서 처지가 완전히 뒤바뀐 겁니다. 미국은 유엔 대표로는 중국을 인정하되 대만에는 회원국으로 남을 것을 제안했지만, 이미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대만은 유엔에서 자진 탈퇴합니다.

미국은 1979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며 중국과 공식적으로 수교를 맺고, 대만과는 단교합니다. 그렇다고 중국 코앞의 전략적 요충지인 친미 성향의 대만을 냉정하게 저버릴 수는 없었던 미국이, 비공식적으로 준군사동맹 수준의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담아 만든 법이 바로 대만관계법입니다.


"대만 포격한 중국에 '핵공격' 엄포 놨던 미국"

중국 본토 바로 앞에 있는 대만의 진먼다오(金門島) 내 마샨(馬山) 관측소에서 바라본 중국. 중국 샤먼(廈門) 지역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군사용 관측소가 지금은 관광 전망대로 사용되고 있다. 중국관광객을 태운 유람선이 금문도 해안을 거쳐 샤먼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역사적으로는 미국이 대만에 군사적으로 개입한 적도 있습니다. 대만관계법이 제정되기 이전인 1950년대 대만해협 위기 때인데요. 우리와도 깊은 관련성이 있습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마오쩌둥의 공산당은 패퇴한 장제스의 대만을 수복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지만,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합니다. 그 직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1950년 1월 당시 미국의 애치슨 국무장관이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서 한국과 대만을 제외하는 이른바 '애치슨 라인'을 선언합니다. 이 선언이 북한에 '남한을 공격해도 미국이 돕지 않겠네'라고 오판의 빌미를 제공했고, 5개월 후 북한 공산당이 남한을 기습해 한국전쟁이 터지니까 미국은 뒤늦게 후회하면서 한국전쟁에 참전하죠.

마찬가지로 중국도 대만이 미국의 방위선에서 빠지니까 '이때다' 싶었지만, 한국전쟁이 먼저 터지면서 '혈맹'인 북한을 도우려 참전하는 바람에 미룹니다. 미국 역시 한국전쟁을 보고는 "중국이 대만도 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해, 중국과 대만 사이에 있는 대만해협에 서태평양을 관할하는 제7함대를 배치하고 대만 방어선을 형성합니다. 1951년엔 100여 명의 군사고문단도 대만에 파견합니다.

1953년 7월 휴전협정 체결로 한국전쟁이 중단되자 중국은 다시 대만으로 눈을 돌립니다. 미국과 대만이 상호방위조약 체결를 논의하던 1954년 중국은 푸젠성(福建省)과 불과 1.8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대만의 최전방(한국으로 치면 백령도 같은 섬) 진먼다오(金門島)를 포격하고, 저장성(浙江省) 타이저우(台州) 앞바다의 이장산다오(一江山島)와 다천다오(大陳島)라는 두 개 도서를 무력으로 점령합니다. 이게 제1차 대만해협 위기(9·3 포격전)입니다. 이 영향으로 1954년 12월 대만과 미국은 상호방위조약을 맺습니다.

미국이 핵무기 사용도 검토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중국의 군사적 공세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5년 2월 급기야 핵폭탄의 사용 가능성까지 암시했고, 부통령이던 닉슨은 전술핵무기를 침략군에 사용할 수 있다고까지 언급했다. 미국의 핵위협에 중국은 부담감을 느껴 추후 군사작전은 중지됐지만, 중국이 핵무기 개발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2018년 국방저널)


"필리핀 등 남중국해 다른 동맹국에도 신뢰 보여줘야"

1996년 대만 진먼다오에 주둔한 대만 대공부대가 중국의 공격에 대비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중국은 1958년 또 진먼다오에 포격을 가하고 '점령'을 시도합니다. 2차 대만해협 위기인데요. 중국 인민해방군은 8월 23일부터 10월 5일까지 포탄 47만 발을 퍼붓자, 대만도 12만여 발을 발사하며 국지전이 이어졌는데요. 미국은 당시 중국을 압도하는 전투기를 제공해 제공권을 장악하도록 돕고, 여러 척의 항공모함도 파견해 막아냅니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5월 기밀보고서를 분석해 "1958년 대만해협 위기 때 미국이 중국 본토를 핵공격할 뻔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핵공격을 검토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는데, 검토 수준을 넘어 미군 지도부가 대만과 일본이 핵보복을 당하더라도 공격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해 거의 핵전쟁이 일어날 뻔했다는 겁니다.

이처럼 근거 법도 있고, 중국의 공격을 받은 대만을 지원했던 경험이 있는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유사시 대만 문제에 군사 개입한다는 발언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특히 대만은 미국의 비동맹국인 우크라이나와 달라, 다른 동맹국과의 신뢰 문제가 달려 있습니다. 대만이 위치한 남중국해에는 이곳을 '해양 진출'의 발판으로 삼으려 호시탐탐 노리는 중국과 크고 작은 분쟁을 겪고 있는 필리핀 등 동맹국이 지켜보고 있죠. 적어도 이 국가들에 확신을 줘야 하는 상황입니다.

실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서 미국이 참전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결말이 예상됩니다. 미국 국방부가 이런 상황을 가정해 시뮬레이션을 해봤더니 미군 전력의 80%를 쏟아부어야 대만 침공을 막을 수 있다는 보도(2021년 4월 미국 디펜스뉴스)가 이미 나와 있네요. 미국이 강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을 이기겠지만, 미국 역시 거의 재앙에 가까운 손실을 입게 된다는 말인데요. 이걸 보면 다행스럽게도 쉽게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네요.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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