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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머슴 전성시대의 저효율 구조

입력
2022.05.04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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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정권 곳곳의 나쁜 머슴이 저효율 초래
우리은행 600억대 사고 등 피해는 국민 몫
선거ㆍ기강잡기 등 주인이 단속 나서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소속 직원의 614억 원 횡령 사건이 터진 우리은행 본점과 우리금융지주 건물 입구에 2일 취재진들이 모여 있는 모습. 뉴시스

소속 직원의 614억 원 횡령 사건이 터진 우리은행 본점과 우리금융지주 건물 입구에 2일 취재진들이 모여 있는 모습. 뉴시스

1997년 외환위기로 치닫던 한국 경제의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고비용-저효율’만 한 게 없다. 1990년대 중반 한국 경제의 비용ㆍ지출은 수년간 급증했다. 고비용과 저효율의 간극을 인위적 저환율 정책과 경상수지 적자로 막으려 했지만, 대중영합 정책은 IMF체제로 귀결됐다. 이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완성, 서민들의 희생과 주요 기업의 혁신 노력에 힘입어 그 망령은 사라진 듯했다.

하지만 불길한 그림자가 다시 어른거린다. 당장은 고비용이 더 눈에 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유가, 곡물ㆍ원자재, 달러화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건 저효율이다. 고비용은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에 적응하면 되지만, 문재인 정권 5년간 국가 시스템 전반에 쌓인 저효율 구조 해소에는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문 정권은 소득주도성장, 문재인 케어 등을 내세워 퍼주기 정책으로 일관했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가 확충시킨 재정을 탕진한 뒤, 빚을 끌어다 썼다.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47%까지 치솟으면서 저효율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문 정부 이전에는 아무 탈 없던 국채 발행이 금리 상승을 초래하는 ‘구축효과’로 이어졌다.

대북 정책도 그렇다. 북한 주민의 보편적 인권은 외면하고 독재자와 북핵을 용인하려는 저자세가 남북관계의 저효율 구조를 심화시켰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개인적 친분을 쌓았겠지만, 일반 국민들은 ‘핵을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초유의 협박까지 듣게 됐다.

문 정권 행태를 본받아 공기업과 금융지주 등 대주주 없는 회사의 경영자도 인기영합 정책을 폈다. 공기업에서 경영 효율보다 직원 처우개선이 중시됐다. 이미 사기업보다 여건이 좋은 공기업 직원의 삶의 질을 더 높이겠다는 데 동의할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코로나19 위기에서 오히려 수조 원의 이익을 낸 금융지주와 그 계열사도 마찬가지다. A금융지주 계열은행의 한 지점장은 “내부 감사와 실적 독려에 대한 압박이 훨씬 덜하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에서 터진 600억 원대 금융 사고는 공기업과 금융회사 창구의 기강해이, 낮아진 직업 윤리가 드러난 단적인 사례다.

공기업은 국민, 금융지주에서는 주주가 주인이다. 정치인이나 경영자는 주인의 대리인, 즉 머슴일 뿐이다. 불행히도 머슴이 주인의 이익 대신, 사익부터 챙기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경영학은 이를 ‘경영자 기회주의’(Managerial Opportunism)라고 부른다. 주인이 선동에 넘어가고 단기 업적주의에 휩쓸리면 머슴은 ‘나쁜 머슴’이 된다. 좋은 머슴은 주인에게 공을 돌리지만, 나쁜 머슴은 시스템이 이룬 성과를 자신의 업적으로 미화한다. 부하의 아이디어를 독차지하거나, 사업 전략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뒤 성과가 나오기도 전에 더 높고 좋은 자리로 옮겨 가는 구실로 삼는다.

나쁜 머슴은 기득권 사수에 총력을 기울인다. B금융지주 회장이 3연임을 추진하자, 측근이던 회사 고위관계자가 “내 목표는 (주주가치 극대화가 아니라) 회장님의 3연임”이라고 주장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에 한때 동의했던 것도 검찰 수사권 무력화가 여야를 막론한 의원들의 기득권 유지에 도움 될 거라는 욕심 때문이었으리라.

많은 이들은 서로마제국이 게르만족에게 망한 걸로 안다. 그렇지 않다. 서기 476년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황제를 몰아낸 건 로마가 고용한 친위대장 오도아케르였다. 주인이 나쁜 머슴을 방치하면 작게는 조직, 크게는 나라가 위태롭다. 유권자들에게 6월 1일의 지방선거, 윤석열 정부의 공기업과 금융권 기강 바로 세우기가 중요한 이유다.

조철환 에디터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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