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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빠 찬스’를 누렸다, 떳떳하게

입력
2022.05.0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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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4월 19일 만평.

한국일보 4월 19일 만평.

#"넌 누구 백이냐." OO기무부대 전속 다음 날 신고식, 부대장이 대뜸 물었다. 없는 백을 물으니 우물쭈물했다. 군용 트럭에 실려 사단 사령부로 쫓겨났다. '백 없으면 기무부대 못 간다'는 풍문은 사실이었다.

사단 신병교육대에 입대한 현역 훈련병 관리 및 전속 임무를 맡았다. 훈련병 개인 정보를 전산에 입력하다 보면 가끔 이상한 병적 대장이 끼어 있었다. 색깔 볼펜으로 찍은 점, 연필로 썼다 지운 흔적 등 유심히 보지 않으면 모른다. 글을 지우지 못한(않은) 듯한 대장도 발견했다. '父(부) OO대 교수'

설마 했으나 차차 알게 됐다. "편한 부대로 보내달라"는 여러 방면의 청탁을 받고 확인하면 십중팔구 이상한 병적 대장에 적힌 이름이었다. 제각각 낯선 병을 앓고 있다는 유사점도 포착됐다. 최근 장관 후보자 덕에 처음 알게 된 척추협착증처럼.

#언론사에 9번 떨어졌다. 그중 7번이 최종 면접이었다. 명문이라 '불리는' 대학에서 매 학기 성적장학금을 받고 7학기 만에 조기 졸업한 평균 학점은 4.0을 넘었다. 막노동해 번 돈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고, 무료급식소에서 6개월 설거지를 했다. 긴장하면 말이 빨라지고 발음이 새는 습성과 능력 부족을 자책했다.

중2 때부터 품었던 꿈의 유효 기간은 대졸 후 1년으로 정했다. 어머니는 사망하고 아버지는 실직한 삼형제 중 맏이가 버틸 마지노선이라고 여겼다. 누군가의 '사시 9수'에 내포된 집념보다 그 재력이 더 부럽다.

아버지는 "빚이라도 낼 테니 더 해보라"고 부추겼다. "넌 할 수 있어" "널 믿는다"고 다독였다. 응원이 절실했던 시절, 평소 무뚝뚝했던 아버지의 취중 위로가 소중한 '아빠 찬스'였다. 그래서 비슷한 처지의 청춘을 만나면 아낌없이 응원한다. 합격 소식을 전해 오면 내 일처럼 기쁘다. 마지막이라 다짐한, 가장 가고 싶던 언론사에 졸업 1년 1개월 뒤 붙은 게 삶의 반전이다.

오래전 기억을 소환한 문장은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자녀의 의대 편입학 및 병역 특혜 의혹에 휩싸인 장관 후보자는 "자녀들의 노력이 저 때문에 의심받고 있어, 아버지로서 마음이 아프다"고 호소했다. 일국의 장관을 꿈꾸면서 평범한 아버지들의 마음과 그 자녀들의 노력이 받은 상처와 좌절은 헤아리지 않았다. 자신도 일개 국민이면서 '국민 눈높이'가 따로 있는 것처럼 변명했다. 자료 제출 요구와 이해충돌 문제 제기는 "떳떳하다"는 강변으로 눙쳤다.

임종 직전 내 아버지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해 준 게 없어 미안해." 눈물을 삼키고 맞받았다. "아니에요. 아버지가 최고였어요. 사랑해요." 그리고 꼭 안아 줬다. "땀 흘리지 않은 건 탐하지 말라"던, 평생 노동으로 자식을 부양한 내 아버지의 삶이 그 자체로 '아빠 찬스',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고로 난 떳떳하다. 평범한 아버지들은 떳떳하다.

'조국 사태'의 교훈을 희롱한 그들만의 아빠 찬스를 세상은 '굥정'이라고 조롱한다. 자승자박이다. '공정과 상식' 구호 덕에 선택된 정권의 시작 전이 이 정도라면 앞으로 5년이 걱정이다. 가진 자들이 지겹도록 입에 담는 공정과 상식이 허망한 건 그 문장에 삶이 녹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탈무드는 꼬집는다. "돈이면 이 세상 모든 것을 살 수 있지만 한 가지 살 수 없는 것은 상식이다."

고찬유 혁신데스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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