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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자의 힘으로 제가 하고 싶은 건요

입력
2022.04.04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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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88년생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와 93년생 곽민해 뉴웨이즈 매니저가 2030의 시선으로 한국정치, 한국사회를 이야기합니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28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시위에 참석해 정치권을 대신해 사과한다며 무릎을 꿇고 있다. 뉴스1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28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시위에 참석해 정치권을 대신해 사과한다며 무릎을 꿇고 있다. 뉴스1

칼럼을 쓴다는 건 힘을 갖는 일이다. 사회적 말하기가 허락된 지면에 누구의 목소리를 더 담고 무엇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이야기할지를 결정하는 건 분명한 힘이다. 1,700자의 힘으로 나는 조금 더 나은 정치를 기대할 수 있는 장면을, 더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기 위해 필요한 제안을, 사회적 존재인 개인이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기 위해 필요한 질문을 고민하며 글을 쓴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책 '사람, 장소, 환대'에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이 된다는 건 내 존재가 모욕받지 않고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일, 매일매일 상호 작용하는 가깝거나 먼 타인에게 '의견을 나누고 협력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일상의 동료로서 대접받는 것이다. 가진 힘이 더 클수록 사회에 더 많은 장소를 만들 수도 있고 좁힐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쓰는 1,700자가 더 많은 이들에게 장소를 여는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이동권 투쟁을 문제 삼았다. 이 대표는 "서울 시민을 볼모로 잡는 시위 방식을 중단하라"며 "시위를 지속하지 않는다면 언론이 배석한 장소에서 전장연을 만나겠다"고 했다(3월 6일 이 대표의 페이스북에서). 그의 발언이 장애인 혐오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전장연이라는 단체가 수행하는 시위의 방법론을 지적한 것이지 장애인 혐오가 아니다"라며(4월 2일 MBC 라디오 '정치인싸'에서) 이것이 "젊은 세대와 서울 시민이 바라는 것"(3월 31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이라고 했다.

출근길 지하철 시위는 장소를 얻기 위한 싸움이다. 많은 이들이 침묵하고 방관하는 문제가 '여기에 있다'고 드러내는 일이다. 물론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 실려 한 시간씩 일터로 나가는 시민들에게 이 시위가 달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순간을 인정한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역사를 두텁게 이해하기 때문이든 공공연한 장소에서 장애인에 대한 비판을 하기를 꺼려서 참거나 견디는 것이든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정하는 과정에서 환대의 장소가 넓어진다.

힘을 가진 정치인이 저 방식은 틀렸다고 말하는 순간, 넓어진 장소가 단숨에 쪼그라든다. 함께 쪼그라드는 것은 장애인이 매일매일 집 밖으로 나와 마주하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받는 대접이다. 이 대표는 자신이 시위의 방식만을 문제 삼았다고 하지만 그의 말에 기대 누군가는 참거나 견뎠던 불만을 얼굴에 대고 쏟아낸다. 의견을 듣거나 협력할 방법을 찾는 대신 '당신이 틀렸다'고 이야기하고 날카롭고 불편한 눈초리를 보내기를 꺼리지 않는다. 이 대표가 정당의 이름으로 넓히는 것은 차별의 공간이고 좁히고 있는 것은 환대의 공간이다.

이번 칼럼을 쓰며 1,700자의 힘에 대해 생각했다. 이번 지면에서 나는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 현장을 찾아 무릎을 꿇은 김예지 국민의힘 국회의원을, 박경석 전장연 대표를 포함한 활동가를, '나는 그런 정치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연대하는 시민들을 부르는 것으로 힘을 쓰고 싶다.

정치인은 입법가의 역할 이상으로 더 많은 시민을 사회라는 공동체 안으로 초대해야 하는 책임과 권한을 가진다. 내가 아는 것을 당 대표가 모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협상과 대가를 말하는 조건문 사회에서 기꺼이 여백을 만들고 장소를 주는 정치인의 역할을 젊은 서울시민으로서 골똘히 묻는다.


곽민해 뉴웨이즈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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