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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들마다 사랑한 일벌레 한덕수… 경제관은 '중도보수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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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들마다 사랑한 일벌레 한덕수… 경제관은 '중도보수 DNA'

입력
2022.04.03 20:5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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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초대 총리 후보자 한덕수, 누구?

윤석열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한덕수 전 총리가 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자회견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한덕수 전 총리가 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자회견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한덕수(73) 전 총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최고 권력자들이 중용한 '행정의 달인'이다. 행정고시 출신의 정통 관료로 경제·통상 분야 전문성을 갖춘 데다, 정파색이 옅은 게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그를 '경력직 총리'로 호명한 것도 철저한 업무 스타일을 높이 평가한 데 따른 것이다.

40년 직업 공무원… 요직 두루 섭렵

1949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한 후보자는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1970년 행정고시(8회)에 합격한 이후 공직자로서 내내 승승장구했다. 관세청 사무관으로 출발해 경제기획원,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등에서 일했다. '자유무역협정(FTA) 전도사'로 불릴 정도로 통상이 특화 분야다.

윤 당선인은 3일 한 후보자의 총리 지명을 발표하면서 "정파와 무관하게 오로지 실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은 분"이라고 소개했다. 한 후보자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매번 요직에 중용됐다. 김영삼 정부에선 상공부 통상무역실장, 특허청장, 통상산업부 차관을 역임했고, 김대중 정부에선 초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대사,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맡았다. 경제수석 때인 2001년 중국산 마늘 수입 자유화 은폐 문제가 불거져 공직을 잠시 떠났다.

노무현 정부는 한 전 총리를 다시 불러내 국무조정실장(장관급),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국무총리를 연달아 맡겼다. 이명박 정부도 장관급인 주미 대사를 맡겼다.

'중도 보수 DNA'… 文정부 소득주도 성장도 비판

한 후보자의 경제관은 엘리트 관료 출신답게 '중도보수 DNA'가 두드러진다. 총리 지명 직후 한 후보자의 일성도 '재정 건정성 확보'였다. 그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엄청난 재정 확장 정책이 계속됐다"며 "단기적으로는 불가피하지만, 중장기적으로 큰 위기 의식을 느끼고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윤 당선인이 코로나19로 인한 소상공인 손실보상 등을 위해 50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을 추진 중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에 미칠 영향이 우려된다는 소신을 드러낸 것이다.

한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경제 기조에 대해서도 "진행하는 과정이 너무 빨랐고, 방법론에서 무리한 경우도 있었다"며 각을 세웠다.

2007년 4월 24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함께 입장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2007년 4월 24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함께 입장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철저한 자기 관리… '혼자 결정' 보다 '토론' 좋아해

한 후보자의 총리 시절 별명은 '일 벌레'였다. 참모들보다 먼저 일어나 조간 신문을 모두 검토한 뒤 회의를 주재했고, 늘 꼼꼼한 질문을 던져 실무진을 긴장시켰다고 한다.

자기 관리가 철저해 관료 사회에서도 늘 한 발 앞서나갔다. 초임 공무원 시절부터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그는 총리 시절에도 영어 단어를 암기하기 위해 수첩을 꺼내보는 일이 잦았다. 학구파이기도 하다. 1979년에 미국 하버드대에서 석사를, 1984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업무를 볼 땐 혼자 결정하고 지시하기보다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2005년 재정경제부 장관 시절 확대간부회의를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시스템을 도입했고, 모든 직원들이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도록 했다고 한다. 총리 시절에도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린 영리병원 도입 문제를 검토하면서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관료를 모두 모아 토론하게 한 일화는 유명하다.

지향하는 가치나 성향이 희미한 것이 오히려 흠이라는 평가도 있다. 총리는 고도의 정무적 판단을 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총리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론 개혁 추진이 정치적 쟁점으로 떠올랐을 때 그는 '총리가 청와대를 의식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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