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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우 숨통 조이는 러… 침공 8일만에 남부 전략 요충지 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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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우 숨통 조이는 러… 침공 8일만에 남부 전략 요충지 함락

입력
2022.03.03 19:20
수정
2022.03.03 22:10
5면
0 0

러시아군 남부 항구도시 헤르손 점령
하르키우·마리우폴 주요 도시도 맹공
탱크부대 키이우 25km까지 전진배치
CNN "러, 장기 섬멸전으로 전략 수정"
대규모 민간인 사상 우려 목소리 커져

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인근 도시 보로디앙카에서 한 건물이 러시아군 폭격으로 화염에 휩싸였다. 보로디앙카=EPA 연합뉴스

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인근 도시 보로디앙카에서 한 건물이 러시아군 폭격으로 화염에 휩싸였다. 보로디앙카=EPA 연합뉴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조여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과 시민들이 결사적으로 대항하면서 진군 속도를 다소 늦추고는 있지만, 국가 심장부를 향하는 적군의 군홧발을 멈추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개전(開戰) 8일만에 남부 전략 요충지인 헤르손을 점령했다. 주요 도시에서도 잇따라 격전이 벌어지면서 우크라이나 운명은 또 다시 바람 앞 촛불 신세가 됐다. 속전속결에 실패한 러시아가 '장기 섬멸전'으로 전략을 수정, 무차별 공격에 나서면서 민간인 피해가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왔다.

선명해지는 푸틴의 ‘육상 교두보’ 밑그림

3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을 종합하면 이날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동ㆍ남ㆍ북부 곳곳에서 거센 공격에 나섰다. 크림반도 바로 위에 위치한 항구도시 헤르손은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 중 처음으로 러시아 손에 넘어갔다. 이고르 콜리하예프 헤르손 시장은 “무장 군인들이 시의회를 차지했다”며 러시아군의 점령 사실을 인정했다. 이 곳은 동부 돈바스와 서부 몰도바의 친(親)러시아 반군 지역과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구상하던 ‘육상 교두보’ 밑그림이 점차 선명해지는 셈이다.

헤르손과 돈바스를 이어주는 남동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운명도 위태롭긴 마찬가지다. 이날 무려 15시간에 걸친 포격과 맹공이 이어지면서 최소 수백 명이 숨지고 주요 기반시설 파괴로 물과 전기공급이 끊겼다. 세르히 오를로프 마리우폴 부시장은 “러시아군이 수㎞ 거리를 두고 도시 사방을 포위한 채 야포와 다연장 로켓, 항공기 등을 총동원해 시내 핵심 시설을 파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2 도시 북동부 하르키우(하르키프)에도 폭격이 이어졌다. 시청과 경찰본부, 대학 건물이 파괴됐고 하루 사이 최소 34명이 숨지고 285명이 다쳤다. 오데사, 체르느히우, 미콜라이우, 흐멜니츠키 등 주요 도시 곳곳에서도 포성과 화염이 끊이지 않았다.

1일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 의료진이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부상입은 시민들을 들것에 태워 이송하고 있다. 마리우폴=AP 연합뉴스

1일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 의료진이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부상입은 시민들을 들것에 태워 이송하고 있다. 마리우폴=AP 연합뉴스

키이브를 향한 러시아군의 포위망도 점점 좁혀지고 있다. 탱크 부대 등 대규모 병력이 키이우 인근 25㎞까지 전진배치됐다. 이날 새벽 키이우에서는 최소 4건의 대형 폭발이 보고되면서, 대규모 공격 위협은 현실화 하고 있다. 비탈리 클리치코 시장은 시민들에게 “집이나 방공호에 머물러 달라”고 당부했다.

러 전술변화 감지… “민간 희생 늘어날 것”

러시아의 전술 변화도 감지됐다. 당초 속전속결 전격전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주요 도시를 하나씩 함락시켜 우크라이나군을 서서히 전멸시키는 '장기 섬멸전'으로 전략이 바뀌었다는 게 미국 CNN방송의 분석이다. CNN은 “격렬한 소모전이 이어지면서 앞으로 러시아는 도시와 민간 표적에 대한 살벌하고 치명적인 폭격에 집중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군인은 물론,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날 우크라이나 당국은 지금까지 민간인이 최소 2,000명 숨졌다고 주장했다. 고국을 등져야 하는 피란민은 1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유엔은 집계했다. 난민이 대거 유입되면서 이날 체코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작지만 희망이 없진 않다. 키이우로 향하던 러시아군의 진격이 더뎌진 것. 미 국방부는 지난달 28일부터 64㎞ 행렬을 이루며 수도 북쪽 외곽까지 진격한 러시아군이 지난 24~36시간동안 별다른 움직임 없이 정체 상태라고 전했다. 연료는 물론 병사들에게 먹일 음식까지 동나면서 전투를 지속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군의 사기저하가 눈에 띈다고 밝히기도 했다.

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의 한 부부가 조산원 지하로 대피해 갓난아기를 보살피고 있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의 한 부부가 조산원 지하로 대피해 갓난아기를 보살피고 있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국제사회의 무기 지원도 이어진다. 독일 공영 도이치벨레(DW)는 독일이 구(舊)동독이 보유하고 있던 소련제 대공미사일 ‘스트렐라’ 2,700기를 우크라이나로 보낸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군은 스트렐라를 지금도 주요 무기 중 하나로 사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인은 대전차 유탄 발사기 1,370개와 경기관총, 그리고 70만발에 이르는 소총 및 기관총 탄약을 우크라이나에 4일 보내기로 했다.

이날 벨라루스의 폴란드 접경지인 브레스트주(州)에서 열리는 휴전을 위한 2차 협상도 관심사다. 우크라이나 국민과 국제사회는 이 자리에서 총성을 멈추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비록 “양측간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지점은 거의 없어 보인다”(AP통신)는 암울한 전망이 우세하지만,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는 것으로도 일말의 기대라도 갖게 한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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