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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 그 폭력의 역사

입력
2021.11.04 17: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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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지
김선지작가

윌리엄 호가스의 정신병원 '베들렘'

윌리엄 호가스, '매드하우스(Madhouse)', 1732~35년, 62.5 x 75 cm, 캔버스에 유채, Sir 존 손 박물관, 런던, 영국

윌리엄 호가스, '매드하우스(Madhouse)', 1732~35년, 62.5 x 75 cm, 캔버스에 유채, Sir 존 손 박물관, 런던, 영국

이 그림은 18세기 영국 풍자화가인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의 작품으로, 당시 악명 높았던 런던의 정신병원 '베들렘'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 남자가 머릿니 예방을 위해 삭발당하고 거의 알몸으로 왼팔과 오른발이 쇠사슬에 묶인 채 기대어 앉아 있다. 뒤에는 멋지게 차려입은 두 명의 여성 관광객이 재미있다는 듯 수감자들을 구경한다. 말이 병원이지 실은 정신질환자를 감금한 수용소였다. 당시 색다른 재미를 찾는 방문객들이 베들렘을 관광했고 부자들은 돈을 지불하기도 했다. '매드하우스'는 한 젊은이가 삶의 쾌락을 좇아 유흥과 도박에 전 재산을 탕진한 끝에 정신병원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 과정을 그린 '방탕아의 편력(A Rake’s Progress)' 8부작 중 마지막 그림이다. 호가스는 산업혁명 이후 부상한 신흥자산계급 출신의 난봉꾼 톰 레이크웰의 인생 역정을 통해 당대 만연한 배금주의와 속물성, 질병과 범죄, 빈곤, 매춘 등 대도시 런던의 어두운 면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오랫동안 정신질환자는 혐오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중세는 물론 20세기 초까지도 선천적 기형과 정신질환을 천형으로 여겼고 가혹하게 대했다. 17세기 중반, 절대군주 루이 14세는 파리에 구빈원(Hôpital général de Paris)을 세워 광인들을 수용했다. 정신질환자를 극빈자, 장애인, 매독 환자, 범죄자와 같은 부류로 뭉뚱그려 강제로 가두었던 것이다. 다른 유럽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광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사람들로부터 격리하는 게 목적이었을 뿐 치료는 전혀 하지 않았다. 수용소의 참혹한 장면을 묘사한 위 그림에서처럼 구빈원에서는 고문과 구타, 학대가 자행되었고, 심지어 오락거리를 찾아 이곳을 방문한 관림객들이 동물원의 동물 구경하듯이 창문 쇠창살 사이로 들여다보고 환자를 놀리거나 작은 창을 던져 묶여 있는 환자를 맞히기도 했다.

18세기 이후 계몽주의와 프랑스혁명의 영향으로 광인을 다른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지만, 비인간적 대우와 감시, 처벌은 여전했다. 20세기 초에는 정신질환자가 나치의 인종청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현재는 그러한 반인륜적인 물리적 폭력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정신질환자는 위험하고 난폭하며 범죄를 잘 저지른다는 편견이 강하다. 광기를 사회적 일탈, 범죄와 혈연관계로 엮으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폭력을 행사했던 17세기의 정신적 유산이 잔존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자료에 의하면, 실제로는 정신질환자들의 범죄율이 일반인에 비해 훨씬 낮다고 한다.

얼마 전, 원희룡 후보의 부인인 한 정신과 전문의가 보수 성향의 유튜브 방송에서 이재명 후보를 반사회적인 소시오패스로 지목했다. 소시오패스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위험한 성격이므로 자신은 그의 존재가 굉장히 두렵다고도 했다. 또, 이 후보의 '로봇 개 뒤집기' 행위는 폭력적 인성이 반영된 것이라며 가슴이 철렁하니 무서웠다고 밝혔다. '골드워터 룰'이라는 정신의학계의 윤리 규정까지 어겨가며 아주 쉽고 간단하게 한 사람을 소시오패스로 진단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권위적 집단이 어떻게 타인을 '비정상' 혹은 정신질환으로 몰아가는지 생각하게 된다. 정신적 문제가 있다고 낙인찍을 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국가에 해악을 끼칠 거라고 은근히 시사하며 잠재적 비행, 또는 범죄와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학자, 평론가, 법률가, 의료인 등 특정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전문가라고 한다. 사람들은 그들의 전문 지식을 신뢰하며 존중한다. 그런데 전문가의 견해가 반드시 옳은 것일까? 이런 사람들이 엘리트 의식에 빠져 자신만이 올바른 판단을 한다고 착각하며 사람들에게 그릇된 지식이나 가치를 설파한다면? 정신과 전문의라는 권위를 등에 업고 타인에 대해 함부로 진단의 칼자루를 휘두른다면? 그들은 정치적 독재자만큼이나 사회적 폭압 구조의 한 톱니바퀴 역할을 할 수 있다. 한 의학전문가의 섣부른 소시오패스 진단이 우려되는 이유다. 폭력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의학적으로 공인된 병명이 아니며 우울증, 조현병처럼 명확한 진단 기준도 없다. 사실, 정신질환 자체도 그 경계가 너무나 모호하다. 역사상의 위대한 통치자나 시인, 예술가 중에도 현대의 정신과 의사가 본다면 정신질환의 범주에 넣을 만한 이들이 부지기수다. 알렉산더 대왕은 성격이 사납고 충동적이며 과대망상에다 편집증이 있었다. 베토벤은 병적인 변덕스러움과 분노조절장애를 가졌으며, 스티브 잡스는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증세로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이들이 모두 위험하고 두려운 존재인가? 광기가 천재성과 통하기도 하지 않는가? 무언가에 ‘미쳤다’는 말은 그 일에 열정을 가졌다는 긍정적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원시시대 신과 소통하고 아픈 사람을 치료한 샤먼도 어찌 보면 광인이었다. 생각과 가치관은 늘 바뀌어 왔다. 과거의 비정상은 현재의 정상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 경우도 있다.

진짜 문제는 나와 우리는 정상이고 너와 너희는 비정상이라는 독선적 이분법이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일까? 자신의 이익과 관점에 따라 선과 악, 혹은 정상과 비정상을 칼같이 가르는 그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남 눈의 티는 보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 그러나 '내로남불'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남을 예단하기 전에, 너무나 유명해 식상할지도 모르지만 수천 년 전 현인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되새겨 보는 게 좋지 않겠나 싶다. '너 자신을 알라!'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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