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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받을 수 없는 슬픔과 아픔

입력
2024.05.08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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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지
김선지작가
이반 크람스코이, '위로할 수 없는 슬픔', 1884년, 트레챠코프 미술관, 러시아 모스크바

이반 크람스코이, '위로할 수 없는 슬픔', 1884년, 트레챠코프 미술관, 러시아 모스크바

이 그림은 아프다. 두 아들을 잃고 비탄에 잠긴 화가가 자신의 감정을 담아 그린 그림이다. 제목처럼 진정 '위로할 수 없는 슬픔'을 묘사했다. 아마도 아이를 묻고 돌아온 것일까? 검은 상복 차림의 어머니가 방 안에 홀로 서서 울음을 삼키는 듯 눈물에 흠뻑 젖은 흰 손수건으로 입술을 지그시 누르고 있다. 한때 죽은 아이의 관이 올려져 있었을 탁자 위에는 친지나 이웃들이 애도 속에서 헌화한 꽃송이들이 아직도 화사하다. 위로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고 무거운 침묵만이 내려앉은 실내에는 아무도 위로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만이 있을 뿐이다. 여인의 부어오른 붉은 눈은 영혼이 빠져나간 듯 공허해 보인다. 그리움과 슬픔, 무기력함만이 가득하다.

그림의 배경은 평범한 거실이다. 가구들, 벽에 걸려 있는 그림, 꺼진 램프, 테이블, 책이 보인다. 그녀 뒤, 벽에 걸린 칠흑같이 검은 바다 풍경화는 여인의 심정을 상징하는 것 같다. 불이 꺼진 램프 역시 죽음의 표상이다. 반쯤 열린 문을 통해 희미한 빛이 들어오고 있다. 이 빛은 시간이 지나면서 슬픔이 사라진다는 것을 암시하는 희망의 빛이 아니다. 간신히 숨 쉬며 이 순간을 살아내는 그녀의 나약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빛이다. 화가는 배경을 황금색, 주황색으로 채색하여 여인의 검은 드레스를 더 선명하게 드러나게 한다. 캔버스를 지배하는 검은색 상복은 위로할 수 없는 슬픔의 느낌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어두침침한 실내와 탁자 위 밝고 화사한 꽃들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바닥에는 튤립과 수선화 화분이 놓여 있다. 인간의 삶처럼 연약한 이것들도 곧 시들 것이고, 생명을 가진 존재의 운명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림 속 모든 것이 죽음 같은 적막 속에 얼어붙었고, 꽃조차도 이 갑갑하고 탁한 공기를 깨지 못한다. 벗어날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절망감 속에서는 보통은 희망의 상징인 빛과 꽃마저도 외로움과 공허함을 배가시킬 뿐이다.

어머니가 자기 아이의 죽음을 보는 것보다 더 큰 슬픔을 경험할 수 있을까. 그녀는 누구로부터도, 그 어떤, 위로도 받을 수 없다. 애도는 혼자 가는 고독한 길이다. 그녀의 모습이 말해 준다. 얼굴은 창백하고 초췌해 보이며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하다. 표정은 침착하지만, 슬픔에 압도당했다는 것을 그 눈빛에서 읽을 수 있다. 관람자는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슬픔을 느끼게 되며 연민으로 마음이 움츠러든다.

이반 크람스코이(Ivan Kramskoy)는 19세기 제정 러시아 시대의 화가다. 그가 살았던 당시의 러시아는 혁명을 목전에 둔 역사적인 격동기였다. 1800년대의 러시아는 유럽 국가들이 산업혁명과 정치혁명을 이루고 근대사회로 돌입한 것과 달리 아직도 전제군주인 차르(Czar)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으며, 1861년에 가서야 농노해방령을 내린 전근대적인 후진 국가였다. 당시 러시아에는 차르의 독재 권력에 도전하고 국민의 비참한 삶을 개선하려는 지식인층인 인텔리겐차(intelligentsia)가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젊은 지식인들이 농민 계몽운동을 통해 사회를 개혁하려고 했던 '브나로드(v narod)' 운동도 그중 하나였다.

크람스코이는 1860~1880년대 탄생한 미술운동 '이동파(Peredvizhniki)'를 이끌며 이런 사회개혁운동에 동참했다. 이동파는 말하자면 미술계의 브나로드 운동이었다. 일리야 레핀, 바실리 수리코프 등 러시아 미술사에 빛나는 화가들이 여기 참여했다. 그들은 황실과 귀족을 위한 아카데미 회화의 고전주의적 미술을 거부하고 현실적인 민중의 삶을 묘사하려고 했다. 모든 민중에게 예술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주기 위해 러시아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전시회를 열었기 때문에 '이동파'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위로할 수 없는 슬픔'은 크람스코이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작품이다. 그는 사람들이 이런 슬픈 작품을 구매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화가는 돈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예술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완성한 후 그는 파벨 트레챠코프(Pavel Tretyakov)에게 기증하려고 했지만, 트레챠코프는 화가에게 후한 그림값을 지불하고 매입했다.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파벨 트레챠코프와 세르게이 트레챠코프 형제는 이동파 화가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했다. 트레챠코프 형제는 수집한 작품들을 모두 기증해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함께 러시아의 대표적 미술관인 트레챠코프 미술관을 세웠다. 이들은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있었던 부유한 인텔리겐차로서, 미술 후원이라는 방법으로 공동체에 기여했고, 지금도 러시아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언젠가는 닥치는 필연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보다 더 큰 인생의 비극은 없다.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시간도 상처를 치유하는 묘약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림의 제목처럼 아무도 위로할 수 없다. 크람스코이의 '위로할 수 없는 슬픔'의 어머니는 군 복무 중 생명을 잃은 꽃 같은 젊은이의 어머니, 그리고 세월호, 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떠난 꽃다운 청춘들의 부모들을 생각나게 한다. 결코 위로할 수 없는 슬픔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로하려고 하고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따뜻함과 의로움에서 한줄기 빛을 본다.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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