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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재난지원금'은 이제 그만

입력
2021.11.0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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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소고기 구이. 한국일보 자료 사진

소고기 구이. 한국일보 자료 사진

맞벌이를 하면서도 두 딸아이를 열 살 넘게 잘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장모님 찬스' 때문이었다. 장모님이 아이를 봐주지 않으셨다면 부부 중 누구 하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돌보기에 전념해야 했을 것이다.

맞벌이 부부가 아이 낳기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돌봄에 대한 부담 때문일 것이다. "학교에 갈 때까지만이라도 아이를 마음 놓고 맡길 곳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아이를 낳겠다"는 후배의 넋두리를 들을 때면, 장모님 존재에 대한 감사함을 다시 느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지난 16년간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투입했다는 200조 원의 정부 예산은 헛다리를 짚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우리 부부도 산부인과를 다니면서 월 10만 원 규모의 진료비를 지원받는 등 관련 예산의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그 지원이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그 돈을 맞벌이 부부의 돌봄 걱정을 해소하는 데 집중적으로 썼으면 어땠을까. 최소한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국가라는 오명은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최근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본 소상공인들이 정부 지원이 적다고 아우성치는 것도 이런 기계적인 예산 배분 정책 때문일 것이다.

강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로 방역에 성과를 낼 수 있었지만, 그 반대급부로 소상공인들은 막심한 경제적 피해를 봐야 했다. 확진자 수 감소라는 물리적 효과를 소상공인들의 재산상 피해와 맞바꾼 것이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여행도 가고 쇼핑도 하는데, 왜 피해는 우리만 보냐"는 어느 소상공인의 절규가 유달리 아프게 들리는 이유다.

하지만 코로나 피해 지원 예산은 이번에도 최대한 골고루 배분됐다. 직장인들도 코로나 피해자인 만큼 재난지원금을 받아야 한다는 게 정부 논리다. 지원 대상을 최대한 넓혀야 한다는 정치권 압박에 소득 하위 88%라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지원 기준도 설정됐다.

전 국민이 코로나19 피해자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득이 줄지 않은 직장인에게 수십만 원의 지원금은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사는 돈이다.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에게 지원되는 돈과는 그 가치가 하늘과 땅 차이라는 얘기다.

이런 와중에 여당에서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 얘기를 또 꺼내고 있다. 정치권이 나랏돈으로 어려운 상황에 빠진 국민을 돕겠다는 것에 반대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경중과 선후가 있다. 당연히 가장 큰 피해를 본 소상공인의 아픔을 먼저 보듬고 여력이 남는다면 지원 대상을 넓혀가는 게 순서일 것이다. 그러나 여당은 이번에도 전 국민이 모두 피해자라며 또 전 국민 지급을 추진할 기세다.

200조 원이라는 큰돈을 쓰고도 저출산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찾지 못한 것이나, 국가채무 1,000조 원의 부담을 지면서까지 지원금을 뿌리고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소상공인을 막지 못한 것은 핵심은 피해가고 변죽만 때린 '예산 낭비'와 다른 말이 아니다.

두 차례 재난지원금이 지급됐을 때 눈길을 끈 뉴스는 소고기 소비 증가였다. 소고기와 재난은 당최 어울리지 않는다. 전 국민에게 다시 돈을 줄 거면 '재난'이라는 이름은 빼고 줬으면 좋겠다. 최소한 그 돈으로 소고기 사먹는 사람들 부담이라도 좀 덜게 말이다.

민재용 정책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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