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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 시작과 함께 불거진 '역사논쟁'...그 열흘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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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 시작과 함께 불거진 '역사논쟁'...그 열흘의 기록

입력
2021.07.1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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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윤석열의 '죽창가' : 대일 외교 기조를 넘어
일제강점기를 보는 관점에 관한 질문도
② 이재명의 '미 점령군' : '용어 논란'부터
'반미 감정의 이용·한미동맹 왜곡' 비판
③ 김재원의 '예안 폄훼 발언': 퇴계 종택 등
유서 깊은 고장 비하에 지역사회 분노

이재명(왼쪽 사진)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출마 선언 이후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의 막이 올랐지만, 첫 열흘은 '역사 논쟁'으로 점철됐다. 파주=뉴시스·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왼쪽 사진)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출마 선언 이후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의 막이 올랐지만, 첫 열흘은 '역사 논쟁'으로 점철됐다. 파주=뉴시스·국회사진기자단

지난달 29일과 이달 1일 야권과 여권의 유력 대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경기지사가 각각 출마를 선언하면서 내년 3월 치러질 20대 대통령 선거 레이스가 본격 막이 올랐습니다.

출발선을 끊었던 윤 전 총장의 기자회견부터 9일 현재까지는 각 후보들의 '역사의식에 대한 검증'이 줄을 이었습니다. 윤 전 총장의 '죽창가', 이 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이 빌미가 됐죠. 상대 진영에서는 각 후보의 역사의식을 문제 삼으며 발언의 부적절성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각각의 발언이 어떤 지점에서 왜 논란이 되었는지 지난 열흘 동안 정치권의 이른바 '역사 논쟁'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① 윤석열의 '죽창가'

한일관계가 이념 편향적 죽창가를 부르다가 회복이 불가능해질 정도까지 망가졌다.

지난달 29일 대선 출마 기자회견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발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9일 윤 전 총장은 '한일관계 개선 방안'을 묻는 일본 NHK 기자의 질문에 "외교는 실용주의, 실사구시, 현실주의에 입각해야 하는데 이념 편향적인 죽창가를 부르다가 여기까지 왔다"며 "지금 한일관계가 수교 이후 가장 열악해졌으며 회복이 불가능해질 정도까지 망가졌다"고 답했습니다.

'이념 편향적 죽창가'란 2019년 일본 정부가 한국을 상대로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조치'를 취했을 때 정부의 대일 강경 기조를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 "우리 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 "결국에는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 둔다" 등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일본을 비판했습니다.(▶관련기사)

윤 전 총장이 이를 '죽창가'라고 지칭한 것은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의 발언 때문입니다. 조 전 장관은 "SBS 드라마 '녹두꽃' 마지막 화에 한참 잊고 있던 노래가 나왔다"며 '죽창가'를 공유했는데요.

죽창가는 동학농민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한 농민들이 파견된 일본군과도 맞섰다는 점에서, 조 전 장관의 SNS를 '반일' 메시지와 연결시키는 해석들이 많았습니다. 조 전 장관이 '죽창가는 반일 또는 대일 강경기조'라는 은유를 만들어 낸 셈이죠. (▶관련기사)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9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 계정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죽창가' 발언을 근거로 그의 역사의식을 비판하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페이스북 계정 캡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9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 계정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죽창가' 발언을 근거로 그의 역사의식을 비판하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페이스북 계정 캡처

그래서인지 이번 윤 전 총장의 죽창가 언급에 가장 열성적인 비판을 쏟아냈던 건 조 전 장관이었습니다. 지난달 29일 자신의 SNS에 "일본 정부와 유사한 역사의식에 경악한다"는 글을 올렸고, 이어 또 한 번 죽창가 가사를 공유했습니다.

또 일본의 무역 제재는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노동자 승소 판결에 대한 보복 성격이 있다는 점에서 ① 대법원의 판결에 동의하는지 ② 무역 제재가 우리 정부 또는 대법원의 탓이라고 생각하는지 등을 물었죠. 윤 전 총장의 역사의식을 검증하겠다는 듯이 말입니다.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일 오후 대전 유성구 더자니펍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탈원전 4년의 역설 만민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전=뉴스1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일 오후 대전 유성구 더자니펍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탈원전 4년의 역설 만민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전=뉴스1

일본과 관련해서는 '죽창가'에 이어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윤 전 총장의 발언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윤 전 총장은 6일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토론회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과거에는 크게 문제를 삼지 않았고, 그때그때 정치적인 차원에서 볼 문제가 아니고, 일본과 각국 협의로 사람들이 의문을 품지 않게 국제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자칫 '일본 오염수 방류에 문제가 없다'거나 '우리 정부가 오염수 방류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었기에 반론도 거셌습니다.

이 지사는 "일본 극우 세력과 그들을 대변하는 일본 정부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고 강력히 비판했고,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일본 자민당 총재직에 도전한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다"고 지적했습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10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10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윤 전 총장은 이튿날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이 오염수 처리가 일본의 주권적 결정 사항이라고 한 답변을 지적한 것"이라고 해명했는데요. 그러나 윤 전 총장이 해명을 위해 강 전 장관의 발언을 일부분만 떼서 썼다는 문제 제기도 있었습니다.(▶관련기사)

국정감사 당시 강 전 장관은 "원칙적으로는 그렇지만(일본의 주권적 결정 사항이지만), 그 결정에 따라 우리 국민의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정보를 요청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기 때문입니다.


② 이재명 '미 점령군'

대한민국은 친일 세력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했다. 나라가 깨끗하게 출발하지 못했다.

1일 출마 선언 이후 고향 경북 안동을 찾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말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이재명 경기지사가 1일 오후 경북 안동시 도산면 이육사문학관을 방문하고 있다. 이재명 캠프 제공·뉴스1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이재명 경기지사가 1일 오후 경북 안동시 도산면 이육사문학관을 방문하고 있다. 이재명 캠프 제공·뉴스1

이 지사는 비대면 출마 선언이 있던 1일 오후 고향 경북 안동의 이육사문학관을 찾아 "대한민국이 정부 수립 단계에서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 체제를 유지했다"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출발을 부정하는 역사인식"(유승민 전 의원)이라거나 "대통령 후보로서 불안한 발언"(정세균 전 국무총리)이라며 그의 자질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었는데요.

가장 주된 공세는 '이 지사가 미군이 우리 정부 수립을 지지했던 역사 또는 한미동맹의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4일 윤 전 총장의 '참전'이 불을 지폈습니다.

윤 전 총장은 자신의 SNS에서 "(김원웅 광복회장의)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황당무계한 망언을 집권세력의 차기 유력후보인 이 지사가 이어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는 윤 전 총장이 상대편 이 지사에 관해 언급한 첫 정치적 발언이기도 했습니다.

이 지사는 같은 날 SNS를 통해 맞불을 놨습니다. "38선 이북에 진주한 소련군과 이남에 진주한 미군 모두 점령군이 맞다. 미군의 포고령에도 점령군임이 명시돼 있다"면서요.

또 "저에 대한 첫 정치 발언을 왜곡 조작한 구태 색깔공세라는 점이 참 안타깝다"고 답했죠.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사이트에 올라온 1945년 9월 9일 자 '맥아더 사령부 포고문'에는 '점령' '점령군'이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다. '우리역사넷' 홈페이지 캡처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사이트에 올라온 1945년 9월 9일 자 '맥아더 사령부 포고문'에는 '점령' '점령군'이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다. '우리역사넷' 홈페이지 캡처

이후 해방 후 정부 수립까지 주둔했던 미군을 점령군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지 며칠 동안 논쟁이 이어지기도 했는데요.

1945년 9월 미 육군 총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발표한 포고문 등 미군 문서에도 '점령(occupation)' '점령군(occupation army)'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는 사실, 학계에서도 당시 미군을 '점령군' 또는 '점령 당국'으로 흔히 표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비판의 뉘앙스가 살짝 바뀌었습니다.

학술적으로 맞다고 하더라도 '발언의 시점상 부적절하다'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죠. 예컨대 "지금 이 시점에선 반미 운동을 부추기는 부적절한 발언임이 분명하다"(홍준표 국민의힘 의원) 또는 "한미동맹을 일방이 강요했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서 부적절하다"(최문순 강원지사)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논란도 파생합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말 때문인데요. 그는 6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과의 인터뷰에서 "점령군이냐 해방군이냐의 논쟁은 무의미하다"며 "광주 반란을 보수 인사가 쓴 뒤 '학술적인 용어'라고 하면 (비난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가"라는 예시를 들었습니다.

'학술적인 용어가 맞다고 하더라도 여러 맥락에 견주어 발언의 적절성에 대한 평가는 가능하다'는 취지의 발언이었지만, 광주민주화운동을 예시로 든 것이 과연 적절했냐는 비판도 있었죠.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자신의 SNS에서 "어제 건강한 모습으로 산책하며 재판에는 건강을 이유로 불출석하던 전두환씨만이 이 대표의 발언을 반겼을 것"이라며 이 대표에게 "전두환과 원팀이냐"고 쏘아붙였습니다.


③ 예안 논쟁

경북 안동의 한 시민이 '이재명 그분은 안동 출신이 아니고 예안 출신이라 기본이 안 돼 있다'고 말하더라.

5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에서 김재원 최고위원의 발언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5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에서 김재원 최고위원이 이 지사를 비판하면서 뜬금없이 안동의 예안이라는 지역을 언급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예안은 안동 지역의 옛 명칭인데요. 1914년 안동군과 예안군이 병합되면서 안동군 예안면으로 편입됐다가, 1995년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며 현재는 행정 구역상 '안동시 예안면'이 되었습니다.

김 최고위원은 '이 지사가 고향에서도 지지를 못 받고 있다'는 측면을 부각하려 했지만, 그보다는 '안동 유교문화의 중심축인 예안을 폄훼했다'는 점에서 김 최고위원의 역사 의식에 관한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예안은 조선시대 성리학을 집대성한 퇴계 이황 선생의 종택과 도산서원이 있는 유림의 본거지이기 때문인데요.

박천민 안동 예안향교 전교는 7일 안동 MBC와 인터뷰에서 "(김 최고위원의 발언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며 "예얀향(지역) 사람뿐만 아니라 성현들, 조상들을 전부 다 욕하는 처사"라고 분노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안동지역 유림들은 항의서한, 항의 방문 등 단체 움직임에 나설 뜻까지 밝혔다고 하죠.


지난달 24일의 청와대 본관 전경. 왕태석 선임기자

지난달 24일의 청와대 본관 전경. 왕태석 선임기자

한편,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이처럼 출발선부터 역사논쟁으로 점철되자 '대통령 후보를 검증하는 자리인데도 한국사회의 미래·비전에 대한 논의가 사라졌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습니다.(▶관련기사)

익명을 요구한 현대사 연구자(박사 수료)는 한국일보에 "미군정에 대해 용어가 혼용될 때가 많은데 점령군, 점령 당국도 흔하게 쓰는 표현 중 하나"라고 설명하며, "이런(용어) 논란이 아직도 있다는 게 퇴행적이다. 그저 퇴행적 색깔론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일침을 놨습니다.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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