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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초 동안 금융을 설명한다? '핀플루언서'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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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초 동안 금융을 설명한다? '핀플루언서'의 시대

입력
2021.06.2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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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내용으로 금융시장 현상, 투자 팁 등 전달
인터넷 '밈'을 적극 활용해 인기
'종목 추천' 등 문제점, 투자자 개인이 주의해야

호주 시드니 거주 핀플루언서 퀴니 탠의 틱톡 영상은 대부분 10~60초 분량이다. 틱톡 캡처

호주 시드니 거주 핀플루언서 퀴니 탠의 틱톡 영상은 대부분 10~60초 분량이다. 틱톡 캡처

"이런, 내가 산 투기성 자산의 가격이 50% 하락했어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제 자산에서 차지한 비중은 5%밖에 안 되거든요."

호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핀톡(금융(Fin)+틱톡)' 창작자 중에 한 명인 퀴니 탠의 영상들은 이런 식이다. 짧으면 10초 남짓이고, 길어도 60초를 넘지 않는다. 짧았지만 메시지는 분명하다. 변동이 심한 자산에는 '큰 베팅'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재 25세인 탠은 급여와 각종 투자수익 등으로 35만 호주달러(약 3억 원)를 모았고, 또래 20대들에게 자산을 형성하기 위한 팁을 권하는 내용으로 온라인 창작자가 됐다.

2020년 3월 유튜브를, 6월에 틱톡을 시작했고 빠르게 명성을 얻었다. 성공한 창작자 세계에선 당연한 얘기지만, 투자 수입만큼이나 유튜브 광고, 금융 기업과 제휴를 통한 홍보 콘텐츠 등도 큰 수입을 가져다준다.

탠에게 투자 분야의 전문성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그의 ①자산을 만들려면 일단 저금부터 하라 ②싼 것보다 오래 갈 것을 사라 ③오래도록 가치가 오르는 것에 투자하라 같은 메시지는 분명히 귀 기울일 만한 조언이다.

이는 과거 2017년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큰 손실을 입었던 경험 등이 밑바탕이 된 내용이기도 하다.

더구나 '틱톡 문법'에 맞는 밈(유행)을 차용한다는 점에서 그는 '핀톡'의 유행과 '핀플루언서' 시대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핀플루언서란 기존의 금융기관이나 전문가들이 아니라, 금융 시장의 전문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 출신의 유명 '투자자'들을 말한다. 인플루언서에 금융을 뜻하는 핀(Fin)을 더한 '핀플루언서'란 이름이 붙었다.


기관마저 투자 전략의 일부로 삼는 '밈'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서 '밈 군주'로 불리는 '릿퀴디티'의 트위터. 최근 미국의 영화관 체인 AMC 주가가 개인투자자들의 구매로 급상승하는 모습을 묘사한 영상이다. 트위터 캡처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서 '밈 군주'로 불리는 '릿퀴디티'의 트위터. 최근 미국의 영화관 체인 AMC 주가가 개인투자자들의 구매로 급상승하는 모습을 묘사한 영상이다. 트위터 캡처

주로 금융시장에 관심을 둔 젊은층을 겨냥해 만든 콘텐츠는 금융시장의 어려운 개념이나 현상을 최대한 간결하게 요약하고, 더 나아가 '웃기게' 만들면서 정보를 전달한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이나 월가의 유명 금융사 대표, 심지어 금융 시스템 자체를 놀리는 풍자 요소도 자주 볼 수 있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핀플루언서' 중 하나는 이런 '밈'을 다루는 데 출중하다. '릿퀴디티(litquidity)'라는 인터넷에서의 자아만 알려진 이 인물은 월가 투자업계에서 부사장급까지 이른 인물이지만, 2017년부터 3년 이상 SNS 계정을 운영하며 금융계 종사자들의 세계를 농담처럼 다루는 '이중 생활'을 즐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주식시장에서 벌어진 이상 현상들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로 작용했다. 새로운 투자자들이 시장에 들어왔고, 금융시장의 기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올해 1월 레딧의 '월스트리트베츠' 투자자들이 벌인 '게임스톱 열풍'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당연히 릿퀴디티도 참전했다. 그는 관을 지고 춤추는 것으로 유명해진 '관짝소년단'에 레딧과 게임스톱 로고를 붙이고, 그들이 지고 가는 관에는 '효율적 시장 가설(맥락상으로 주식시장이 늘 가장 돈이 되는 기업에 돈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의미)'이라고 써붙였다.



'관짝소년단' 밈을 활용해 게임스톱 열풍 당시 시장 상황을 풍자한 릿퀴디티의 인스타그램 캡처

'관짝소년단' 밈을 활용해 게임스톱 열풍 당시 시장 상황을 풍자한 릿퀴디티의 인스타그램 캡처

여러 차례 언론과 접촉했지만 익명을 유지하고 있는 릿퀴디티는 뉴욕매거진과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이전까지는 밈을 농담으로 여겼다면 현재는 훨씬 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때로 직관적인 밈이 복잡한 금융 분석보다 시장에서 돈의 흐름을 설명하기에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그는 "좋은 밈은 재밌으면서 동시에 정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CNBC에서는 '자산운용사들이 밈을 통해 어떻게 수익을 얻을 것인가' 논의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밈 자체에는 올라타되, 개인 투자자들이 너무 많이 뛰어들어 '투 더 문(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떡상')' 같은 인터넷 은어가 잔뜩 들러붙거나 비현실적인 목표가거론되면 손을 빼는 전략을 제시했다.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라'는, 국내 주식 투자자들 사이 공유되는 금언과 비슷한 자세다.



투자 정보라기보다는 엔터테인먼트

최근 가상화폐의 가격 급락을 한탄하는 '핀톡'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안티 비트코인' 노선 전환이나 중국의 가상화폐 채굴 규제 등의 영향으로 가상화폐 시장은 혼란에 빠져 있다. 틱톡 캡처

최근 가상화폐의 가격 급락을 한탄하는 '핀톡'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안티 비트코인' 노선 전환이나 중국의 가상화폐 채굴 규제 등의 영향으로 가상화폐 시장은 혼란에 빠져 있다. 틱톡 캡처

하지만 지난해만 해도 온라인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재밌는 구경거리'에 가까웠다. 그리고 일부는 지금도 그렇다. 틱톡에서 금융을 다루는 영상 가운데 대부분은 주가 상승을 막연히 낙관하거나 자기가 투자한 대상의 가격 상승을 응원하고, 가격이 상승하면 기뻐하고, 하락하면 낙담하는 영상이다.

이 모든 것은 진지한 투자 정보 조언이라기보다는 투자를 소재로 한 엔터테인먼트에 가깝다.

팔로어가 많은 '핀플루언서'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꼭 투자에 성공하거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논란 많은 핀플루언서의 대표적인 예로 트위터의 '도지코인 홍보대사' 일론 머스크를 들 수 있다. 운영하고 있는 테슬라와 관계없는 가상화폐 시장에 목소리를 내는 바람에 비트코인과 도지코인의 가격을 올렸다 내렸다 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그의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암호화폐 거래 플랫폼 플랙스풀은 지난해 가장 인기 있는 '핀톡' 계정 50개의 영상 1,212개를 분석한 결과 그 가운데 14%가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었다고 밝혔다. '투자는 각자의 책임' 같은 별다른 경고 없이 특정 자산을 구매하라거나 수익이 완벽히 보장된다는 식의 내용을 담은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투자 단톡방' 등을 열고 종목을 추천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각 나라 금융당국에서도 문제로 인식은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규제할 수단은 마땅치 않다.

가령 우리나라 금융당국은 '정기적인 대가를 받고 조언하는 경우'는 유사 투자자문업으로 신고해 영업하도록 기준을 정했다. 하지만 별 대가를 받지 않고 순수히 '핀플루언서'로서 시장 상황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는 것까지 통제하에 두기는 어렵다.

결국 당분간 핀플루언서의 콘텐츠를 즐기면서도, 이를 근거로 삼아 실제 투자에 나설지를 결정하는 책임은 오로지 투자자 본인에게 있다.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핀플루언서'의 팔로어 수 등 영향력보다는 그 사람이 제공하는 정보 자체가 신뢰할 만한지, 내용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②공짜로 특정 주식이나 자산을 찍어서 구매를 권한다면 의심해야 한다. 정말 좋은 정보라면 공짜로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③"이것만 하면 금방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대박'은 규칙이 아니라 예외적인 일부 사례에 해당하기 때문에 '대박'이라 하는 것이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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