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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별 위기 남매... 미등록 이주아동 90% 구제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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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별 위기 남매... 미등록 이주아동 90% 구제 안된다

입력
2021.06.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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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법무부 '불법체류 아동 구제책' 발표
"예외적인 임시적 시혜조치 불과" 지적

2018년 7월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에서 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같은 학교 친구인 이란 국적 소년을 난민으로 인정해 달라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2018년 7월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에서 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같은 학교 친구인 이란 국적 소년을 난민으로 인정해 달라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부모를 따라 각각 네 살, 두 살이던 2003년 한국으로 온 우즈베키스탄 태생의 이주아동 카림(22)과 달리아(20). 이들 남매는 청소년 시절 교육청에서 주최하는 통일, 역사 골든벨 대회의 학교 대표를 도맡았다. 초등학교와 중·고교를 모두 한국에서 다닌 카림은 "교과목 중에선 역사를 제일 좋아했다"라고 말한다. 국어를 좋아하는 동생 달리아는 대학에 간다면 문예창작과를 전공으로 택하고 싶었다. 이들에게 역사와 국어는 당연히 '한국사'와 '한국어'이다.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를 다룬 도서 '있지만 없는 아이들'(온유 지음·국가인권위원회 기획)에 등장하는 카림 남매. 그러나 이들 남매는 지난 4월 법무부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발표한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의 대상이 되지 못해 한국을 떠나야 하는 위기에 놓였다. 반면 카림 남매의 부모가 한국에 들어온 후 태어난 고등학교 2학년, 1학년인 셋째와 넷째는 '구제 대상'이 될 수 있다.

같은 부모 아래 태어나 함께 자랐는데도 왜 전혀 다른 상황에 처했을까. 24일 용산나눔의집과 이주민센터 '친구'의 주관으로 열린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 개선방향 토론회 참석자들은 법무부의 자의적인 잣대가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동의 인권을 고려하기보다는 행정 편의적인 기준을 세웠다는 것이다.

엄격한 기준에 90% 이상은 '제외'

24일 용산나눔의집과 이주민센터 '친구'의 주관으로 열린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 개선방향 토론회 참석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용산나눔의집 제공

24일 용산나눔의집과 이주민센터 '친구'의 주관으로 열린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 개선방향 토론회 참석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용산나눔의집 제공

법무부는 올해 4월 미등록 장기체류 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동에게 조건부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국내에서 출생하고△15년 이상 국내에서 거주한 △신청일 기준 국내 중·고교에 재학 또는 고교를 졸업한 미등록 이주아동이 대상으로 2025년 2월까지 한시적으로 신청을 받는다.

다만 이 세 가지 중 하나의 요건이라도 충족되지 않을 경우 대상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해당한다고 무조건 임시체류자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법 위반 여부 등 일정한 심사를 거치고, 미등록 체류 기간에 따라 범칙금도 내야 한다. 범칙금 액수는 만만치 않다. 부모가 7년 이상 체류한 경우 통지 후 3개월 이내에 범칙금을 내면 900만 원, 미등록 기간이 5년 이상 7년 미만이라면 750만원에 달한다. 또 부모의 경우 자녀가 성년이 되면 자진 출국해야 한다.

이진혜 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대상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여 구제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실제로 법무부는 관련 대책을 설명하면서 이 대상에 속하는 아동의 숫자는 전국에 100명~500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공식통계는 없지만, 인권단체들은 한국 거주 미등록 이주아동이 최대 2만여 명에 이른다고 보고 있다.

이 사무국장은 이를 두고 "실제 미등록 이주아동의 90% 이상이 해당 구제대책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무의미한 정책으로 지나갈 가능성이 높다"라고 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인 조혜인 변호사도 "미등록 이주아동 일반을 위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는지 몹시 의문"이라면서 "예외적인 시혜적 임시조치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라고 꼬집었다.

한국 출생, 15년 거주 '근거없는' 기준?

24일 열린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 개선방향 토론회에서 사회자인 대한성공회 자캐오(오른쪽) 신부가 발언하고 있다. 용산나눔의집 제공

24일 열린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 개선방향 토론회에서 사회자인 대한성공회 자캐오(오른쪽) 신부가 발언하고 있다. 용산나눔의집 제공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미등록 이주아동 중에는 한국에서 출생한 아동도 있지만, 카림과 달리아처럼 영·유아기에 입국해 체류하는 아동 역시 다수다. 활동가들은 토론회에서 한국에서 출생해야만 하고, 15년을 체류해야만 심사 자격이 된다는 법무부의 기준에 마땅한 근거가 없다고 했다.

법무부는 조건부 체류자격 부여의 근거로 한국에서 출생, 장기체류한 아동이 본인의 선택과 무관하게 부모의 결정에 의해 한국에 살게 되었다는 점, 한국에 장기 거주하며 공교육을 이수하여 언어·문화적으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했고, 본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적응이 어렵다는 점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의 기본권 향상을 위한 네트워크 소속 김진 변호사는 "이는 해외에서 출생한 후 한국에 입국해 장기간 체류하고 있는 아동에게도 적용되는 문제"라고 했다. 이어 "법무부의 구제대책은 대상을 '국내 출생'한 아동에만 두고 있는 데에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15년이라는 체류기간의 기준 역시 자의적이란 지적이다. 김 변호사는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해외의 국가들의 입법례 등을 살펴보면 기간의 제한을 짧게는 4년, 길게는 10년 정도로 둔다"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도 사회통합 정도, 본국과의 유대, 교육 이수 여부 등의 아동의 개인적 사정, 그리고 아동 최상의 이익을 고려해 거주기간과 무관하게 체류자격을 인정한다는 설명이다. 4~10년의 거주기간 기준이 있다고 해도, 사안에 따라 기한에 상관없이 체류자격을 부여한다.

또 학교에 다니거나 졸업한 아동만을 대상으로 하고 학교 밖 아동을 원천배제하는 점 역시 '차별적'(조 변호사)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분명한 첫걸음, 여기서 멈추지 않길"

지난달 경기도 과천시 법무부 청사 모습. 뉴시스

지난달 경기도 과천시 법무부 청사 모습. 뉴시스

법무부의 관련 대책 발표로부터 불과 며칠 만에 서울 이태원에서 미등록 이주아동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발달장애를 앓는 11세 아들이 실종돼 인근 파출소에 신고를 접수하러 갔던 필리핀 출신 미등록 여주여성이 오히려 '불법체류'라는 이유로 붙잡힌 것. (관련 기사: 인권 없는 준법? 실종 장애아들 찾다 구금된 미등록 이주민) 해당 아동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15년을 거주하지 않았기에 법무부의 구제대책에서 제외된다.

토론회에 참석한 활동가들은 해당 사건을 언급하면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이유"라고 했다. 다만 법무부의 이번 대책은 한계는 있을지라도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는 평가다. 사회자로 나선 자캐오 용산나눔의집 신부는 "법무부의 대책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첫걸음"이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이걸로 끝이라거나 발전이 없다거나 하는 일 없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개선을 요구하는 기회로 삼아나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선 법무부의 미등록 이주아동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법무부는 미등록 이주아동을 아동권리협약에 따른 보호가 필요한 대상이라 설명하면서도 '국민적 반감'에 대한 우려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조 변호사는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법무부의 이런 인식과 태도는 한국의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원인의 하나"라면서 "국민적 공감대는 인종차별적인 관행을 시정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시작될 때야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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