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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 갑질에 부서진 몸과 마음… '딸아 사랑해' 그렇게 그는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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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 갑질에 부서진 몸과 마음… '딸아 사랑해' 그렇게 그는 떠났다

입력
2021.05.2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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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 억울한 일 없도록' 유서와 현금 30만원
최희석씨 코뼈 부러지도록 폭행·감금·폭언·협박
입주민 반성문·탄원서 제출했지만 재판부 단호
2심도 징역 5년 "유족·언론·검찰·법원 탓만" 질타

아파트 경비원 고 최희석씨를 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심모씨가 지난해 5월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에서 구속전피의자심문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아파트 경비원 고 최희석씨를 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심모씨가 지난해 5월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에서 구속전피의자심문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북구 S아파트 경비노동자였던 최희석씨는 지난해 5월 10일 새벽 2시쯤 자신의 자택 근처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중주차된 입주민의 차량을 움직인 대가는 폭언과 폭행이었다. 입주민 심모(50)씨는 경비원 최씨를 '머슴' '종놈'이라고 부르며 최씨의 멱살을 잡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사표를 쓰라고 협박했다. 심씨는 최씨의 코뼈가 부러졌는데도 최씨가 쓰던 경비원 모자로 최씨의 부러진 코를 쉴 새 없이 때리기도 했다. 갖은 폭언과 폭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씨는 관리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관리소장 역시 입주민에겐 '을'의 신분이라 최씨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심씨의 반복적인 갑질에 최씨의 몸과 마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하지만 아프다고 출근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칫 근무태만으로 비쳐 해고될 빌미를 제공할 수 있어서다. 최씨가 부러진 코에 반창고만 붙인 채 1평(3.3㎡) 남짓한 죽음의 일터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결국 최씨는 다른 입주민들이 사건을 알아차릴 때까지 20일 동안 그 어떤 곳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서서히 영혼을 잃어갔다. 그리고 ‘더 이상 경비가 맞고 억울한 일 당해서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해달라’는 유서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최희석씨가 세상을 떠난 지난해 5월 10일은 공교롭게도 최씨가 가장 사랑한 둘째 딸의 생일이었다. 아파트 입주민 심씨의 폭행에 코뼈가 부러져 입원했던 최씨는 병원을 몰래 빠져 나와 집으로 향했다. 둘째 딸은 당시 친구들이 생일을 축하해준다고 해서 집에 없었다. 생때같은 딸과 헤어지는 선택을 하는 와중에도 그는 딸의 생일을 기억했다. 숨진 최씨의 품 안에는 '딸아 사랑해'라는 메모와 함께 30만 원이 든 현금봉투가 들어 있었다. 그의 나이 59세였다.

서울고법 형사6-3부(부장 조은래)는 26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보복상해·감금) 등 혐의로 기소된 심씨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심씨 측은 이날 공판 시작 20분을 앞두고 재판부에 "집을 팔아 합의금을 마련할 테니 팔릴 때까지 기다려달라"며 선고를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세 차례 반성문과 두 차례 탄원서를 제출해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경비원 최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지 나흘 뒤인 지난해 5월 14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아파트에서 최씨의 유가족들이 노제를 지내고 있다. 연합뉴스

경비원 최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지 나흘 뒤인 지난해 5월 14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아파트에서 최씨의 유가족들이 노제를 지내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부는 그러나 "심씨는 여전히 설득력 없는 주장을 하고 있고, 현재 상황에 이른 책임을 피해자, 유족, 언론, 검찰, 법원 등 오로지 남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수차례에 걸쳐 반성문을 제출했으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려고만 하고 자기 합리화만 꾀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이상 진정 어린 반성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측과 합의를 진행한다고 하지만 사실 여부도 확인이 안 됐고, 정작 피해자 측에 사과하지 않아 사건 발생 1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용서받지 못하고 있다"며 "1심 형량이 너무 무겁다는 심씨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날 재판을 지켜본 최씨의 친형 최광석씨는 "앞으로 제2의 최희석이 나오지 않도록 갑질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이현주 기자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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