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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처럼 살고 싶어요" 3040 여성의 새 롤모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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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처럼 살고 싶어요" 3040 여성의 새 롤모델로

입력
2021.04.28 04:30
수정
2021.04.28 12:43
22면
0 0

낙담 딛고 기회로... 희망 메시지 던져
"할머니 되는 건 상실이라 생각했는데
그녀를 보니 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아"

배우 윤여정이 25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후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배우 윤여정이 25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후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윤여정처럼 살고 싶어요.”

배우 윤여정(74)이 지난 25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미나리’ 연기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기사 댓글에서 많이 보이는 글들이다. 배우로서 최고 영예를 안은 것에 대한 부러움의 표시인 동시에 평탄치 않은 삶을 살면서도 묵묵히 자기 길을 걷다가 70대 중반에 큰 성취를 이룬 그에 대한 존경이다. 윤여정은 노력과 성실이 배신당하는 시대, 따를 만한 어른을 못 찾는 30, 40대 여성들에게 특히 큰 영감을 줄 만하다.

윤여정이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후 남우조연상 수상자 대니얼 컬루야와 여우주연상 수상자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함께 어깨동무 자세를 취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윤여정이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후 남우조연상 수상자 대니얼 컬루야와 여우주연상 수상자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함께 어깨동무 자세를 취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시크한 유머 능력 갖춘 배우

윤여정은 2012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생을 긍정과 부정 반반 정도로 나눠 생각한다”며 “긍정보다는 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데, 그래야 실망을 안 한다”고 밝혔다.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은 후 “인생을 오래 살아서, 배반을 많이 당해서 그런지 수상을 바라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는 섣불리 희망이나 기대 같은 거품 섞인 단어를 쓰지 않는다. ‘아파야 청춘이다’식 수식에 지친 이들에게는 인생에 대한 윤여정의 무심한 태도가 더 설득력 있다.

그는 나이를 앞세워 후배들을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저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 67살이 처음이야”(tvN ‘꽃보다 누나’)라고 말한다.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고, 배우를 특별한 직업으로 포장하려는 가식이 없다. “절실해서 연기를 했고, 정말 먹고 살려고 연기를 했다”고 밝힌다. 유머를 섞어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으면서 할 말을 한다. “민폐가 되지 않을 때까지 영화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겸양을 갖췄다.


‘라때’ 대신 소통

윤여정은 권위 의식이 거의 없다. “요즘 후배들은…” 같은 말을 종종 꺼내는 동년배 배우들과 다르다. 여느 70대 배우들과 달리 전도연 송혜교 등 따르는 젊은 후배들이 많은 이유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교유하기도 한다. ‘지풍년’이라는 모임이 대표적이다. 윤여정이 모임에서 사람들이 자기 말만 하려 하는 걸 보고 ‘지X도 풍년이다’라고 말한 데서 이름이 나왔다. 이재용 감독과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배우 강동원 등 11명이 함께하는 모임이다. 직업이 다양하고 연령도 40~70대로 골고루다. 이재용 감독은 “윤여정 선생님은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면서 젊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이라며 “젊은 정신을 유지하시는 윤여정 선생님은 뱀파이어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윤여정의 과거 연기 모습

윤여정의 과거 연기 모습


낙담 딛고 기적 일궈낸 성실함

윤여정은 1987년 가수 조영남과 이혼한 후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방송국은 캐스팅을 주저했다. 이혼녀가 출연하면 국민정서에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인기마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렵게 잡은 출연 기회를 발판 삼아 입지를 다져야 했다. 윤여정은 오스카를 받은 후 “엄마가 열심히 일했기에 이런 상을 받았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신산했던 과거가 스며 있는 소감이다.

몸에 밴 성실함이 무기였다. 윤여정은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배우는 아니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모든 대사를 완벽히 외우지 않으면 배역을 제대로 해내기 어렵다는 생각에 촬영 전날 잠도 안 잘 정도로 외운다”며 “지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고 냉철하게 준비해 역할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심 대표는 윤여정이 출연한 ‘바람난 가족’(2003)과 ‘그때 그 사람들’(2005)을 제작했다.

도전 정신이 강하다. 해야 하는 연기라면 물러서지 않는다. 윤여정은 ‘돈의 맛’(2012)에서 재벌가 여인 백금옥을 연기할 때 농도 짙은 침실 장면에 대해 처음엔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내용 흐름상 필요하다는 임상수 감독의 말에 신체 노출을 피하지 않았다. 이재용 감독이 ‘죽여주는 여자’(2016) 출연을 제의했을 때도 불쾌감을 표시했다가 “노인 문제와 고독사 문제를 다룬 영화가 필요하다”며 작업에 참여했다.


30, 40대 여성의 새 롤모델

30, 40대 여성들은 윤여정의 성취에서 많은 메시지를 읽는다. 어려움을 겪고 이룬 성공을 과시하지 않는 점을 주목한다. 최영희(43)씨는 “윤여정이 오스카상을 받는 걸 보고 끝까지 성실하게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윤여정이 실패로 많이 배웠다는 식의 말 대신 자기 삶으로 사람들에게 충고하는 듯해 좋았다”고 말했다.새로운 롤모델이 생겼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소영(30)씨는 “할머니가 되는 건 막연히 무언가의 상실이라고 생각했는데, 윤여정을 보고 나이 드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며 “여러 간난신고를 겪었음에도 지난 삶을 미화하지도 동정하지도 않는 태도가 멋졌다”고 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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