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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에 대한 이론적 고찰

입력
2021.04.25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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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스틸컷. NEW, 영화제작전원사 제공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스틸컷. NEW, 영화제작전원사 제공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남녀관계의 역학이라는 붓으로 인생이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영화이다. 우연히 만난 유부남과 미혼여성의 연애담을 1부와 2부에서 각각 소제목을 달고 두 번 재생하는데 1부에서는 유부남이라는 것을 숨기다가 나중에 발각되면서 여인이 실망하는 반면, 유부남임을 먼저 밝히면서 여인의 마음을 얻게 되는 2부의 소제목이 바로 영화의 전체 제목이 된다.

2020년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나는 옳고 다른 이는 틀리다'라는 뜻의 신조어인 '我是他非(아시타비)'가 선정되었다고 한다. 또 미국의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의 기사에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뜻의 '내로남불(Naeronambul)'이 등장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키워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나는 해도 괜찮지만 남은 하면 안 된다'는 '이중잣대(double standards)'라고 할 수 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책을 통해 프레임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는 저서 '폴리티컬 마인드(political mind)'에서 '우리 뇌 속의 신경 체계는 상호 억제를 위해, 즉 모순적인 가치 체계가 서로 다른 맥락에서 사용되도록 설정되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중개념(dual concept)'이란 용어를 설명하면서 '두 개의 세계관이 하나의 뇌에 존재하더라도 서로 겹치지 않는다면 삶의 영역에서 양립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진정한 이중개념의 소유자는 결코 자신을 위선자로 보지 않을 것이라는 '내로남불'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믿는 가치가 외부의 현실과 충돌하게 되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럴싸한 이유를 찾아내게 되는데 정신의학에서는 이런 방어기제를 합리화(rationalization)라고 부른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George Owell)은 저서 '1984'에서 더블 싱크(double think)란 신조어를 제시했는데 '한 사람이 두 가지 상반된 신념을 동시에 가지며, 그 두 가지 신념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고 비꼬았다. 후대의 학자들은 이 개념을 '더블 스피크(double speak)'로 발전시켰는데 쉽게 말하면 '한 입으로 두말하다'란 뜻으로 일부러 모호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쉽게 변명을 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계산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앎의 근거를 찾기 위한 학문인 인식론(epistemology)에 의하면 이성적인 사람은 일반적인 경험이나 합리성을 통해서 사물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내로남불'에 익숙해지면 본인한테 유리하게만 상황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똑같은 하늘을 보고도 '하늘이 파란 이유'를 과학적인 근거에 의해서 증명하려는 사람들과 파란 멍을 보면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라고 감성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다른 인식체계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원래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본인에게 유리한 인식체계를 가진다는 이유만으로 지나치게 비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사회 지도층의 '내로남불'이 비판받는 것은 개인 생존에만 유리한 이기적인 유전자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이타적 밈(meme)이 우리 사회의 발전에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그런 역할을 기대하고 권력을 위정자들에게 위임하는 것이다.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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