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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검찰 수사로 이어진 '윤중천·박관천 보고서' 왜곡·과장 판쳤다

입력
2021.04.19 04:30
수정
2021.04.20 09:4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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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가 직접 쓰는 윤중천·김학의 백서]?
<1> 면담보고서의 이면
대검 진상조사단 1249쪽 결과보고서 분석
풍문 근거 집요한 질문 통해 답변 끌어내

한국일보가 입수한 윤중천·박관천 면담보고서 및 대검 진상조사단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 조사 결과 보고서에는, 윤씨와 김 전 차관을 둘러싼 이해관계들이 다양하게 얽혀있음이 확인된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한국일보가 입수한 윤중천·박관천 면담보고서 및 대검 진상조사단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 조사 결과 보고서에는, 윤씨와 김 전 차관을 둘러싼 이해관계들이 다양하게 얽혀있음이 확인된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이른바 '윤중천·박관천 면담보고서'가 상당 부분 왜곡·과장돼 작성됐거나 신빙성 낮은 풍문 수준의 내용이 기재된 것으로 드러났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2년 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사건과 관련해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작성한 면담보고서 내용을 근거로 '청와대 수사외압' '윤중천 리스트' 등의 정황을 확인했다고 발표하며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졌지만, 정작 수사 근거가 된 면담보고서에는 신뢰하기 힘든 정보가 담겨 있었다.

한국일보가 윤중천·박관천 면담보고서 및 대검 진상조사단 8팀이 작성한 1,249쪽 분량의 김학의 전 차관 사건 최종 결과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이규원 검사 등이 건설 브로커 윤중천씨와 박관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을 만난 뒤 작성한 면담보고서에는 △김학의·한상대(전 검찰총장) 수천만 원 뇌물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수사외압 의혹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접대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접대설 △최서원(최순실) 배후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면담 참석자들이 작성한 메모, 면담보고서 초안, 참석자 진술 등을 종합해볼 때 당시 윤씨와 박 전 행정관의 전체적인 발언 취지는 면담보고서에 기재된 내용과 달랐다. 결정적으로 두 사람은 나중에 검찰에 출석해 이전에 말했다는 내용마저 모두 부인했다.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2019년 건설 브로커 윤중천씨를 만나 쓴 '윤중천 면담보고서'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관련한 문구가 적혀 있다. 한국일보 취재 결과, 해당 문구는 윤중천씨에 대한 반복적이고 집요한 유도 신문을 통해 윤씨로부터 "그랬을 수도 있다"는 수준의 답변을 끌어내 작성된 것으로 파악됐다. 홍인기 기자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2019년 건설 브로커 윤중천씨를 만나 쓴 '윤중천 면담보고서'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관련한 문구가 적혀 있다. 한국일보 취재 결과, 해당 문구는 윤중천씨에 대한 반복적이고 집요한 유도 신문을 통해 윤씨로부터 "그랬을 수도 있다"는 수준의 답변을 끌어내 작성된 것으로 파악됐다. 홍인기 기자

면담보고서를 작성한 이규원 검사가 윤중천ㆍ박관천 진술을 변형해 기재하거나 질문 내용을 답변처럼 작성한 흔적도 보였다. 윤씨가 김학의 전 차관에게 용돈을 줬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얼마를 줬는지에 대해선 답변을 회피했지만 면담보고서에는 "수천만 원의 현금"이라고 기재됐다. '윤석열·윤갑근 접대설'의 경우 윤중천씨에 대한 반복적이고 집요한 유도 신문을 통해 윤씨로부터 "그랬을 수도 있다"는 수준의 답변을 끌어낸 것으로 파악됐다. 박 전 행정관이 '청와대 수사 외압' '최순실 배후설' 등과 관련한 질문에 "제가 말씀드리긴 부적절하다"며 방어적 태도로 추측성 진술을 하거나 전해 들은 내용을 말하는 식으로 진술했는데도, 사실관계 확인 없이 해당 내용이 고스란히 보고서에 담기기도 했다.

이렇게 작성된 윤중천·박관천 면담보고서는 애초 작성 방법과 형식부터 허술했다. 면담 대상자가 정식 조사를 꺼려 사적 대화를 나눈 수준이었고, 녹취 없이 참석자들의 기억에 의존해 사후적으로 대화 내용을 요약한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이 같은 내용들은 모두 사실인 것처럼 언론에 유출됐다. 또 '수천만 원 뇌물' '청와대 수사외압' '윤갑근 접대설' 등은 수사권고나 촉구 형식을 통해 검찰 재수사로까지 이어졌지만, 대부분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검찰권 남용의 부작용을 바로잡겠다던 진상조사단이 오히려 어설픈 내용을 근거로 검찰 수사를 부추겼던 셈이다.

특히 진상조사단 활동 내용이 집약된 8팀 최종 결과보고서 1,249쪽 어디에도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하는 뚜렷한 근거가 없었다. 결과보고서는 김학의 사건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별장 성접대' 사건에 대해서도 일관된 평가를 내리지 못했다.

최종 결과보고서가 이처럼 허술하게 정리되다 보니 김학의 사건은 1년이나 조사를 해놓고도 백서조차 내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공적 기구인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이 의혹을 제대로 검증하기는커녕 소모적 논란을 확대하는 데 앞장섰다는 이야기다. '검찰 과오 반성 및 신뢰 회복'이라는 선의로 시작한 과거사 조사가 과거사위·진상조사단의 과욕과 무책임, 무능력으로 정반대 결과를 낳은 셈이다.

윤중천ㆍ김학의 백서를 쓰는 이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선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찾아내 진실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2017년 12월 법무부는 검찰 과거사위원회를 발족하면서 과거 사건 규명을 통한 ‘더 나은 미래’를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선정한 ‘윤중천ㆍ김학의 성접대 사건’은 가장 주목 받는 사건으로 꼽혔다.

과거사위는 이후 “검찰의 중대한 봐주기 수사 정황이 확인됐다”고 발표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검찰개혁의 기폭제가 되기는커녕 당사자들이 제기한 소송과 정치적 논란, 그리고 ‘불법 출국금지’와 ‘면담보고서 왜곡’이라는 후유증만 남겼다.

한국일보는 그 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1,249쪽 분량의 ‘윤중천ㆍ김학의 성접대 사건 최종 결과보고서’와 수사의뢰의 근거가 된 ‘윤중천ㆍ박관천 면담보고서’를 입수했다.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 검찰ㆍ경찰ㆍ사건 관계인들을 접촉해 불편한 진실이 담긴 뒷이야기도 들었다. 이를 통해 자극적이고 정치적인 구호에 가려 주목 받지 못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지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낸 이유는 ‘압도적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데 보탬이 되기 위함이다.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이 1년간 파헤치고도 발간하지 못한 백서를 한국일보가 대신 집필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 싣는 순서> 윤중천ㆍ김학의 백서

<1> 면담보고서의 이면

<2> 진상조사단의 실체

<3> 반칙 : 윤중천이 사는 법

<4> 이전투구 : 김학의 동영상

<5> 법과 현실 : 성접대와 성착취

<6> 동상이몽 : 검찰과 경찰

<7> 반성 : 성찰 없던 활동


특별취재팀= 정준기 기자
최나실 기자
이승엽 기자
신지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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