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서울시장 후보 12인의 '소리없는 유세', 한번 보실래요?

알림

서울시장 후보 12인의 '소리없는 유세', 한번 보실래요?

입력
2021.04.03 17:30
0 0

역대 가장 많은 29장 공보물, 들여다보니...
후보자 검증 위한 '최소 제도', 공약 홍보 역할도
명함 크기 부터 소책자까지... 크기도 부피도 다양
신생 정당, 젊은 후보 일수록 디자인 감각 부각

4·7 재·보궐 선거 서울시장 공보물을 펼쳐놓은 모습. 후보마다 다른 스타일로 개성을 드러냈다. 한진탁 인턴기자

4·7 재·보궐 선거 서울시장 공보물을 펼쳐놓은 모습. 후보마다 다른 스타일로 개성을 드러냈다. 한진탁 인턴기자

4·7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일주일 앞둔 지난달 31일 두툼한 선거 공보물이 각 가정에 속속 배달됐습니다.

역대 가장 많은 12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던지면서 유권자들은 어느 때보다 묵직한 공보물 봉투를 받게 됐죠. 10명의 후보가 입후보했던 2018년 서울시장 선거때보다도 많은 수준입니다.

12명 후보의 A부터 Z까지 보여주는 서울시장 공보물 29장, 꼼꼼히 들여다봤습니다.

종이 공보물, 누가, 왜 보내는 거지?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열흘 앞둔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 주민이 우편함에서 선거공보물을 챙기고 있다. 뉴스1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열흘 앞둔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 주민이 우편함에서 선거공보물을 챙기고 있다. 뉴스1

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선관위는 지난달 28일 투표 안내문과 후보별 공보물이 들어 있는 우편물 488만1,625부를 발송했습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관위는 선거인명부(유권자수) 확정일로부터 이틀 안에 투표안내문이 포함된 선거 공보물을 세대별로 발송해야 해요.

서울에 거주하는 유권자는 842만5,869명이지만, 각 가구에 한 건이 배달되기 때문에 전체 유권자 수의 절반에 해당하는 우편물이 각 가정으로 보내진 겁니다.

발신자가 중앙선관위로 돼 있는 우편 봉투에는 기호 1번부터 15번까지 12명 후보의 정보가 담긴 공보물이 들어 있습니다. 수는 총 29장, 역대 서울시장 공보물 중 가장 많은 분량입니다.

사실 공보물을 꼼꼼히 읽는 유권자는 드물죠. 때로는 종이 낭비 아닌가 하는 말이 나오기도 하구요. 그런데도 선관위가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공보물을 일일이 보내는 이유는 뭘까요.

교과서 같은 답을 찾자면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에 출마한 모든 후보는 모든 유권자에게 '후보자정보공개자료'를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후보자정보공개자료에 들어가는 항목은 ①인적 사항 ②재산 상황 ③병역 사항 ④세금납부·체납 실적 및 ⑤전과기록입니다.

유권자가 후보들을 검증할 수 있게 최소한의 정보를 제공해 깜깜이 투표를 막기 위해서죠. 후보자의 공약을 알리는 것도 또 다른 목적입니다.

공보물의 약속, 공약 실행 평가 때 근거로 쓰여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각 후보 측에서 제출한 선거 공보물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각 후보 측에서 제출한 선거 공보물을 옮기고 있다. 뉴스1

공보물에는 필수로 포함되는 공개 자료와 함께 후보자 이력과 정견, 공약 등이 들어갑니다.

특히 선거 공보물에 나온 공약은 선거가 끝나고 난 뒤에도 후보자가 공약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 평가하는데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되기도 하죠.

온라인이나 유세장을 통하면 보다 간편하게 공약을 전달할 수는 있지만 모든 유권자에게 골고루 알리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노년층이나 장애가 있는 경우 온라인을 능숙하게 이용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죠.

하지만 우편을 통해 집집마다 보내는 공보물은 모든 유권자에게 똑같이 전해질 수 있습니다. 우편물은 여전히 모든 유권자에게 정보를 확실하게 전달하는 목적에 가장 적합한 수단이죠. 인쇄물로 읽어 보기를 원하는 유권자도 여전히 존재하는 게 현실이구요.

이는 공보물을 무작정 없앨 수 없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는데요. 선관위 관계자는 "여전히 디지털에 취약한 계층이 존재하고 공보물에 의존하는 유권자가 많은 실정이라서 공보물 발송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합니다.

크기도 두께도 후보마다 천차만별

2021년 서울시장 후보 공보물을 낱장으로 펼쳐 놓은 모습. 후보별 공식 공보물에 평균 2장(4페이지)을 사용했다.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2021년 서울시장 후보 공보물을 낱장으로 펼쳐 놓은 모습. 후보별 공식 공보물에 평균 2장(4페이지)을 사용했다.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선거법에 따르면 공보물의 크기①가로, 세로 사이즈가 각각 19㎝, 27㎝ 이내로 제한되고, ②최대 12페이지를 넘지 않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 기준만 지키면 형식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제작할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후보들이 선보인 공보물도 한 장짜리 명함 크기부터 12페이지 책자형 공보물까지 사이즈와 부피가 제각각입니다.

분량 면에서 단연 눈길을 끈 것은 기호 1번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2번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였습니다. 두 후보 모두 종이 가운데를 스테이플로 고정한 책자형 공보물을 제작했습니다. 컬러 용지에 분량은 6장(12페이지)입니다. 이는 선거법상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만들수 있는 최대 분량이죠.

군소정당 후보들은 상대적으로 간소한 공보물을 펴냈습니다. 기호 7번 허경영 후보(8페이지), 6번 신지혜 후보(6페이지), 9번 이수봉·12번 송명숙(4페이지) 등을 제외하면 6명은 책자형 대신 한 장짜리(2페이지) 전단지형 공보물을 만들었죠. 전단지형에는 앞 뒤로 공개 정보와 공약이 간략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선거법상 후보자는 벽보와 공보물을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선거 자금으로 상대적으로 큰 돈을 쓸 수 있는 거대 정당 후보일 수록 두껍고,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군소 정당 후보일수록 사이즈는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호 6번 신지혜, 11번 김진아, 무소속 신지예 후보는 지면에서 채 못 담은 공약을 큐알(QR) 코드로 스캔해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기호 8번 오태양 후보 등 4명 후보의 공보물은 눈에 띄게 작았습니다. 보통 공보물이 A4용지보다 약간 작은 사이즈라면 이들은 그 절반 이하 크기로 공보물을 냈어요.

기호 13번 정동희 후보의 공보물은 가로 7.5㎝, 세로 11㎝로 초미니 사이즈입니다. 다른 후보의 공보물과 함께 섞여 있으면 찾기가 힘들 정도로 작네요. 큰 종이 사이에 아담한 크기의 공보물이 오히려 앙증맞게 눈에 띕니다.

공보물을 컬러로 인쇄하지 못한 후보도 있습니다. 기호 10번 배영규, 14번 이도엽 후보죠. 이 후보는 증명사진과 주요 정책을 간략히 소개한 공보물을 제작했고, 배 후보의 경우 유일하게 공보물에 사진이 없어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튀어야 본다' 유권자의 눈 사로잡는 파격

1995년 실시된 첫 민선 서울시장 선거의 후보 공보물 표지.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5년 실시된 첫 민선 서울시장 선거의 후보 공보물 표지. 한국일보 자료사진

우선 거대 양당의 박영선, 오세훈 후보의 공보물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공보물의 공식을 따랐습니다.

①반듯한 정면 사진, ②당의 상징색인 파란색과 빨간색을 활용해 옷 색깔을 맞추고 ③유권자 손 잡는 사진과 공약 시각 자료를 넣은 '정석' 같은 공보물을 보면서 어디서 많이 봐온 것 같은 기시감을 느끼는데요.

첫 민선 서울시장을 뽑은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래로 후보들은 비슷한 공식을 따랐죠. 전형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효과가 좋다는 얘기가 아닐까요.

박 후보와 오 후보의 공보물은 예전 스타일과 비교해 색감이나 스타일이 조금 세련돼졌을 뿐 형식 면에서는 눈에 띄는 차이는 없는 무난한 스타일입니다.

오히려 두 정당에 가려 덜 주목받고 있는 소수 정당, 무소속 후보자일수록 공보물에 공을 들인 모습입니다. 상대적으로 선거 운동에 투입할 조직이나 자금이 부족한 후보들은 유권자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가 적기 때문에 유권자가 직관적으로 인지하는 공보물에 주력할 수밖에 없죠.

특히 기본소득당, 여성의당, 팀서울 등 신생 정당의 여성 후보들은 감각이 남달랐습니다. 파랑, 빨강, 노랑 등 전통적인 원색을 탈피한 새로운 색을 쓰고, 독특한 구성과 개성 있는 글씨체를 적극 활용해 '튀는' 공보물을 만들었습니다. 자금과 조직, 인지도를 넘어 '꼭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기 위한 나름의 고육책이죠.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등장한 후보 공보물 표지. 한국일보 자료사진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등장한 후보 공보물 표지. 한국일보 자료사진


기호 6번 신지혜 후보의 공보물은 컬러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후보가 속한 기본소득당이 상징색인 '베이직민트그린' 색이죠. 기성 세대에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어디서도 본 적없는 민트색 계열 색상과 흰색 서체를 사용해 깔끔하고 신선한 느낌을 줬습니다.

기호 11번 김진아 후보는 보라색을 상징색으로 사용했습니다. 보라색은 여성의 자유와 평등을 상징하는 색으로 알려져 있죠. 20세기 초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에 나선 여성들이 보라색을 운동의 상징색으로 삼으면서입니다.

여성의당에 속한 김 후보 역시 보라색으로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냈습니다. 정면을 비껴간 인물 구도, 왼쪽에 배치된 공약 등 마치 여성 잡지 표지를 연상시키는 첫 표지가 이목을 끕니다.

무소속 신지예 후보는 단독 사진이 아닌 전신 사진을 넣은 것이 특징입니다. 신 후보는 무소속이지만 '팀 서울(Team Seoul)' 소속으로 이들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신 후보 외 6명의 팀원도 성평등, 공동체경제, 문화 예술 등 분야에서 부시장 후보로 함께 소개됐죠. 1페이지라는 제한된 지면에 팀 사진과 함께 공약을 한눈에 보기 쉽게 표로 실었습니다.

기호 8번 오태양 후보는 자신의 이력을 한글 서체에 드러냈습니다. 우리나라 첫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대체복무제 도입을 끌어낸 성과를 '공존'을 상징하는 6가지 무지개색 글씨로 나타냈습니다.

기호 8번 허경영 후보는 '공약 집중형' 스타일을 선택했습니다. 먼저 표지에는 '국가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둑놈이 많습니다'라는 도발적 슬로건이 시선을 붙잡아요. 다음 장부터 이번 선거에서 자신이 내놓은 4대 공약과 함께 과거 언급했던 공약 33개에 순번을 매겨 소개합니다. 주 지지층인 어르신들을 배려한 상대적으로 큰 글자 크기가 인상적입니다.

또 하나의 선거전을 보는 재미

서울시장 후보들의 공보물 유세전은 이번 선거의 숨어있는 관전 포인트다. 한진탁 인턴기자

서울시장 후보들의 공보물 유세전은 이번 선거의 숨어있는 관전 포인트다. 한진탁 인턴기자

선거의 또 다른 링에서 거대 정당 후보들은 정석을 따랐고, 군소 후보들은 작은 지면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주요 유권자를 타깃으로 하는 독특한 스타일, 문구를 활용해 분투하는 모습이네요.

선거 때면 어김없이 배달되는 공보물, 주목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지만 선거에 재미를 주는, 숨은 관전 포인트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유권자 여러분! 투표장으로 향하기 전 12명 후보들의 조용하지만 치열한 유세전을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12명 후보자의 공보물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책·공약알리미 사이트(http://policy.nec.go.kr)에서 공보물 '내려받기'를 하면 PDF 파일로 볼 수 있습니다.

손효숙 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