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램지어 파문으로 본 학문의 자유

입력
2021.03.10 00:00
26면
0 0


위협·괴롭힘이 아닌 한 토론은 보장해야
학문자유 침해하면 되레 역공세 빌미돼
램지어 파문은 학계의 자정능력 보여줘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하버드대 로스쿨 유튜브 캡처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하버드대 로스쿨 유튜브 캡처


근래 파문을 일으킨 하버드 로스쿨의 마크 램지어 교수의 일본군 위안부 논문은 위안부 문제를 위안부와 위안소 업주 사이의 계약관계로 보고 양측의 인센티브와 전략을 분석한 글로서 법경제학 학술지에 투고되었다. 그 글에서 램지어는 위안부 동원에 국가의 개입이 없었고 위안부는 자유의사에 따라 합리적 선택을 했음을 단언했을 뿐만 아니라, 별도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그간 알려진 바가 거짓임을 일본의 우익 매체를 통해 주장했다. 이를 보면서 불편한 마음이 생긴 것은 물론이지만 동시에 걱정되는 바도 없지 않았다. 학문적인 반박이 나올 시간적 여유 없이 분노의 여론이 비등했기 때문이다.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벌어지는 역사전쟁에서 대중정서가 앞서갈 경우 학문의 자유 침해 문제가 제기되면서 그의 도발적 발언에 대한 비판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오히려 일본 우익과 인식을 같이 하는 그의 관점이 힘을 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걱정이 지나쳤나?

램지어는 짧은 시간에 세계의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집중적 성토를 당했다. 간토대지진기와 종전 후의 재일한인, 일본의 부라쿠민, 오키나와인 등 소수집단을 조직폭력과 부패에 연관짓는 논문을 썼음도 알려지게 되었다. 부실한, 심지어 교묘하게 왜곡된 근거와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언어로 제국주의를 옹호하고 피억압집단을 능멸하는 글을 상습적으로 써온 것이었다. 하버드 로스쿨의 한국과 아시아 학생들이 성명을 내는 등 교내외에서 비난이 쇄도하자 하버드대 총장은 학문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램지어를 성토한 전문가 중에도 그 점을 부연한 사람들이 있다. 위안부에 대한 통념을 공격하면서 램지어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학문의 자유는 좋은 무기가 된다. 이에 대해 호주학자 테사 모리스-스즈키는 램지어의 논문은 연구진실성의 견지에서 평가될 문제라 반박했고, 이용식·박찬운은 학문의 자유가 거짓을 유포할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아니라고 언명했다.

문제가 되는 학문의 자유는 무엇이며, 램지어는 어떤 취급을 받아야 마땅한가? 학술지가 논리적 오류나 근거 부실을 이유로 논문을 게재하지 않는 것은 당연히 가능하지만 관점을 이유로 거부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편 쏟아지는 비판적 분석 덕분에 램지어와 일본 우익의 주장이 얼마나 비루한지 세상이 알게 된 만큼 오히려 게재를 막음으로써 공개적 비판을 피해가게 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학계 밖의 일반인들이 게재 거부를 압박하거나 파면을 요구하는 행위, SNS를 통한 부정적 여론 동원은 어떠한가? 근래 미국 사회는 '올바른 관점'에 배치되는 연구나 작품을 퇴출시키고 발언을 막으려는 캠페인과 보이콧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학은 그런 행동을 학문의 자유의 이름으로 배격한다. 2014년 시카고대가 채택하고 81개교가 동조한 시카고성명서는 '진정한 위협이나 괴롭힘' 등을 수반하지 않는 한 표출되는 생각이 '도발적'이거나 '부도덕'하더라도 토론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다.

램지어가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발언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음은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 박유하의 사례로부터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램지어에게 탄약을 제공해준다. 2년 전 그는 '위안부와 교수들'이라는 논문을 통해 한국은 학문적 반대로 인해 처벌받는 나라임을 비웃었다. 이번에 램지어를 혹독하게 비판한 하버드대의 앤드루 고든이 박유하에 대한 민형사재판을 비판한 지식인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인사 중 하나였음도 주목된다. 램지어 파문은 학계의 자정능력이 강함을 보여주었다. 학문의 자유를 제한할 필요가 없음도 알려준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