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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파업, 위기이자 기회

입력
2021.02.26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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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정규직화 파업, 정규직 반대 직면
비정규직 임금, 인사체계 부재 갈등 씨앗
?노동자 분열 시대...'연대' 가치 중요해져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지난 1일 강원 원주시 고용노동부 원주지청 앞에서 건보 고객센터 노조 조합원들이 파업 집회를 하고 있다. 원주=연합뉴스

지난 1일 강원 원주시 고용노동부 원주지청 앞에서 건보 고객센터 노조 조합원들이 파업 집회를 하고 있다. 원주=연합뉴스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자 900여명이 지난 1일부터 콜센터의 직영화를 요구하며 벌였던 파업을 24일 만에 풀고 현장으로 돌아갔다. 위탁업체에 소속된 이들 콜센터 노동자는 자신들이 민감한 건강정보를 취급하고 있고 다른 사회보험공단 콜센터들은 직영으로 운영되고 있다면서 “공단이 직접 고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최대한 많은 콜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으며 위탁업체의 중간착취로 저임금(평균 월 201만9,000원ㆍ2019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만큼 공단 직영화라는 근본적 해법을 내달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일단 현장으로 돌아왔지만 앞으로 콜센터의 운용방식을 논의할 노사전문가 회의에 자신들이 추천한 전문가를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고 수용되지 않으면 다시 파업에 들어간다는 입장이기에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이들의 호소는 절박하지만 이 문제가 당장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젊은층의 목소리가 부쩍 커진 건보공단 노조의 반발 때문이다. 조직 장악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김용익(69) 공단 이사장도 힘에 부치는 것 같다.

공단 노조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번 사태는 더욱 안타깝다. 건보공단 노조는 건강보험통합 문제를 놓고 정서ㆍ이념적으로 10년 이상 반목했던 직장의료보험조합, 지역의료보험조합이 어렵사리 통합해(2014년) 만들어졌다. 당시 양 노조의 자발적 통합은 사측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실리적 목적도 있었지만, 건강보험조직의 통합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 연대의 수준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명분에 조합원들이 동의했다는 의미도 있었다. 노동운동의 중핵적 가치인 ‘연대’를 실현하겠다는 지향성이 노조 내부에 남아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랬던 노조가 불과 10년도 안 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라는 시대적 과제에 등을 돌린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물론 이런 문제가 건보공단에서만 불거진 건 아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진행됐던 서울교통공사, 인천국제공항 등 곳곳에서 비슷한 문제가 터져 나왔다. 이들 사업장에선 정규직을 오로지 경쟁이 치열한 노동시장에서 얻어낸 지위로 간주하는 젊은이들이 소위 공정성을 앞세워 비정규직들의 정규직 직고용을 가로 막은 게 특징이다.

공공부문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마중물 삼아 이를 민간으로 확산시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은,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20만명이 넘는 비정규직의 고용을 안정시켜 준 정책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무차별적으로 확산된 외주화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작은 방파제 역할쯤은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에만 신경 썼을 뿐 고용안정 이후 비정규직의 인사ㆍ임금체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정교한 후속 플랜이 없었던 게 화근이 됐다. 비정규직들은 고용안정 이후에 쟁의를 통해 임금ㆍ처우를 대폭 개선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반면 치열한 노동시장의 경쟁을 통과해 정규직이 된 이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빼앗길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을 갖게 됐다.

어쨌든 이 정책으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에 대처하지 못한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취약한 고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자기 조합원들의 복지ㆍ후생만 챙기는 실리주의적 조합주의에 매몰돼 보수진영엔 ‘이기주의자’로까지 낙인 찍힌 우리 노동운동엔 뼈아픈 대목이다. 이런 정규직-비정규직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사태는 노동운동의 위기를 보여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위기는 역으로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노동운동의 본령인 연대의 가치를 북돋우고 퍼뜨리는 노력이 필요할 때다. 하루가 다르게 분열되고 고립되고 단자화된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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