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혐의 소명 충분하지 않아"
월성 원자력발전소(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관련 검찰 수사를 받아온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법원이 백 전 장관의 범죄 혐의가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인데, 청와대 등 '윗선'을 향해 뻗어나가던 검찰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전지법 오세용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9일 백 전 장관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오세용 부장판사는 전날 열린 백 전 장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현재까지 제출된 자료만으론 범죄혐의 소명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 부족하고,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오 부장판사는 "관계자들의 진술이 확보된 상태에서 피의자에게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영장실질심사는 검찰과 변호인간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며 10시간 가까이 소요됐다.
검찰은 지난 4일 업무방해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백 전 장관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백 전 장관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위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경제성 평가 조작에 개입해 한수원의 정당한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과 감사원 등에 따르면 한수원은 2018년 4월 월성 1호기의 계속 가동이 필요하다고 판단, 조기 폐쇄를 하더라도 이사회 결정 직후가 아닌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운영변경 허가 때까지 미뤄달라는 입장을 산업부에 밝혔다. 하지만 백 전 장관은 산업부 직원들을 질책하며 "한수원 이사회 조기 폐쇄 결정과 동시에 즉각 가동 중단하라"는 결정을 내리게 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검찰은 백 전 장관이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산업부 공무원들이 월성 원전 자료 530건을 삭제한 과정에도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원전 수사의 분수령이 될 백 전 장관 신병 확보에 실패하면서, 무리한 영장 청구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검찰은 영장실질심사에서 사안의 중대성 등을 들어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강하게 주장한 반면 백 전 장관 측은 법리 다툼의 소지가 있다며 기각돼야 한다고 맞섰는데, 법원은 백 전 장관 측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백 전 장관은 이날 오후 2시10분쯤 법원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면서 "장관 재임 때 법과 원칙에 근거해 적법 절차로 (원전 관련) 업무를 처리했다"며 위법 행위는 없었다는 취지로 소명했는데,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검찰은 구속영장 기각으로 향후 청와대 등 윗선을 향한 수사의 동력도 상실했다. 검찰은 이미 기소된 산업부 원전라인 직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원전 폐쇄 과정에 청와대의 의사가 반영된 물증을 확보했지만 숨고르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산업부 직원들에 대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삭제된 문건 530건에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월성 원전을 폐쇄하기 직전 청와대와 산업부가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특히 산업부가 2018년 5월 23일 생산한 '에너지전환 보완대책 추진현황과 향후 추진일정' 등의 문건에는 'BH(Blue house)', 즉 '청와대 보고용'을 뜻하는 단어가 포함돼 있었다. 산업부가 한수원 이사회가 열리기 전 그 결과를 미리 청와대에 보고한 정황도 확인됐다.
검찰은 백 전 장관이 구속될 경우 당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을 지낸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을 조사해 정확한 사실 관계를 규명할 방침이었지만, 일정 조율이 불가피해졌다. 검찰은 보강수사를 통해 백 전 장관에 대한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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