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수사 기막힌 타임에 지휘권 발동?
자제없이 헌칼 휘두르는 정치적 접근?
사면초가 신세 윤 총장, 진퇴 결정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채널A 기자가 한동훈 검사와 합동으로 이철 전 VIK 대표를 협박하여 유시민 작가의 비리를 캐려 했다는 제보자X의 프레임과 유사했다. 접대받은 검사집단이 수사를 변질시켰다는 정도로 변주됐을 뿐이다. 라임 사태의 주범인 김봉현이 ‘검사들을 접대하고 야당 정치인에게 돈을 줬다’는 옥중서신을 공개했을 때 검언유착 사건을 떠올린 건 그 유사한 구조 때문이다.
두 사건 모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기막힌 타임에 수사지휘권으로 낚아채 국면을 전환시켰다. 법조 역사상 두 번째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결과, 검언유착 사건은 태산명동(泰山鳴動)했다. 하지만 유착의 고리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여권 정치인 연루 의혹이 파다했던 VIK 금융사기 사건은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추 장관이 또다시 수사지휘권을 들이댄 라임 사건도 비슷하게 될 모양이다. ‘접대받고 사건을 깔아뭉갰다’는 윤석열 라인 검사들이 여론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서일필(鼠一匹)이 어른거린다. 휴지조각이 돼버린 펀드에 1조6,000억원씩이나 넣은 투자자들의 눈물은 또 누가 닦아 준단 말인가.
역대로 검찰총장과 갈등한 법무부 장관이 한 둘이 아니다. 그래도 노무현 정부의 천정배 장관을 빼고 검찰총장의 수사권을 박탈한 적은 없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지키기 위한 법률가적 자제였을 것이다. ‘(법무부 장관은)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ㆍ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ㆍ감독한다’는 검찰청법 8조의 규정도 검찰의 중립성을 보장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하지만 정치인 추 장관은 이 조항을 ‘검찰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의 의미로 해석하고 수시로 선을 넘었다. 이번까지 6개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배제했다. 수사지휘권은 이제 조자룡의 헌 칼이 되고 말았다.
추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며 내세운 명분도 검찰 독립성이다. 검찰이 야당 정치인과 윤석열 총장 가족을 감싸고 돌면서 수사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의심되는 상황이라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압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던 검찰총장이 수사에서 배제되면서 이제는 일선 지검장들이 오롯이 책임을 지게 됐다. 지검장들이 과연 ‘법무총장’이 된 장관의 시선조차 외압으로 여기지 않고 독립적인 수사 결과를 낼지 지켜볼 일이다.
윤 총장 가족 사건에서는 도리어 정치적 의도가 엿보인다. 부인과 장모가 연루된 네 가지 사건은 지난해 임명 과정에서 대체로 검증을 거쳤으며, 검찰 수사를 통해서도 몇 차례씩 훑었지만 뚜렷한 혐의점을 찾지 못한 사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총장님’이라는 특별 호칭으로 임명할 당시 여당 의원들이 “법원 판결이나 검찰 수사로 이미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이 난, 신빙성 없는 고소고발 사건”이라고 입을 모아 방어막을 쳤던 사건들이다. “윤 총장이 애초부터 개입하거나 보고를 받지 않았다”(대검 입장문)는 사건을 지휘권 박탈 대상에 슬쩍 밀어넣은 것은 ‘공개적 찍어내기’ 의도 외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추 장관이 단행 한 두 번의 인사로 윤 총장은 수족이 모두 잘린 채 대검찰청에 사실상 유폐된 상태다. 이제 주요 사건의 수사지휘권마저 빼앗겨 식물총장으로 전락했다. 안팎에서는 "(총장직을) 과감히 던져라” "버터야 한다" 는 주문이 엇갈려 쏟아지고 있다. 어떤 전직 검찰총장은 “사표를 내느냐 마느냐보다 서서 죽을지 싸우다 죽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도 했다. 남아 있어도 대통령이 주문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밀어붙일 수 없는 환경이다. ‘조직에 충성한다’는 윤 총장의 선택지가 그만큼 좁다는 얘기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