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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요청 수용한 베를린 소녀상 철거, 납득 어렵다

입력
2020.10.13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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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시민들이 지난달 25일 미테구 거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옆 비문을 읽고 있다. 베를린=연합뉴스

독일 베를린 시민들이 지난달 25일 미테구 거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옆 비문을 읽고 있다. 베를린=연합뉴스

독일 베를린시 미테구 거리에 현지 시민단체 주도로 최근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 갑작스러운 구 당국의 명령으로 철거 위기를 맞았다. 이 소녀상은 코리아협의회가 구의 허가를 받아 독일에서 세 번째이자 공공장소에 처음 세운 위안부 피해자 기림 동상이다. 구 당국은 14일까지 자진 철거 않으면 강제 집행하겠다며 "사전에 알리지 않은 비문을 설치해 독일과 일본 관계에 긴장이 조성됐다" "국가 간 역사 논쟁에서 한쪽을 돕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구의 관련 위원회 승인을 거쳐 건립된 동상을 9일 만에 철거하라며 미테구가 내세우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사전 동의 없는 비문이 문제라면 그 부분만 시정 요구하면 될 일을 왜 동상 철거까지 하려는지 의문이다. 전시 여성 성폭력 피해를 기억해 되풀이 말자는 소녀상의 취지를 한일 논쟁으로 축소하는 것은 일본이 소녀상 건립을 방해하며 펴는 논리다. 독일 당국이 보편의 인권에 눈 감고 가해의 역사를 회피하려는 일본과 뜻을 같이하겠다는 의미인지 묻고 싶다.

일본은 베를린 소녀상을 막기 위해 외무장관이 독일 외교장관에게 직접 철거 요청했고 일부 일본 언론은 "외무성의 독일 설득이 효과를 봤다"고까지 말한다. 일본의 항의를 받아 독일 외교부가 미테구 행정에 개입한 것이라면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전쟁 피해 기억운동을 가해국의 논리로 독일 정부가 통제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장 비판받아야 할 것은 물론 일본 정부다. 일찍이 고노 담화를 통해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해 놓고도 '강제 연행' '성노예' 같은 용어가 왜곡이라며 소녀상 설치에 결사반대하는 행태는 용납할 수 없다. 일본 정부가 외교력을 총동원해 철거를 압박하고 나선 마당에 우리 외교부가 "민간의 자발적 움직임"이라며 "정부 관여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서도 안 될 일이다. 소녀상 갈등은 양국 국민이 납득할 과거사 반성을 담은 새로운 위안부 합의로 풀어야 할 문제이지만, 그 과정에 일본의 이런 치졸한 외교가 무슨 도움이 될지 알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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