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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자본주의 속 정부의 역할

입력
2020.09.17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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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하이선'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려 강원 삼척시 초당저수지 인근 주택 1채가 산사태로 반파됐다. 뉴스1

태풍 '하이선'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려 강원 삼척시 초당저수지 인근 주택 1채가 산사태로 반파됐다. 뉴스1


2020년은 전 세계가 설상가상을 체험하는 한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를 강타했고 확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그런 중에 한국은 올 여름 유례없이 긴 호우와 홍수를 겪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태양광을 산사태의 주요 원인이라고 비판했고, 4대강 사업은 홍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산림청은 이번 장마의 전국 평균 강수량이 750㎜로 전국 어디서나 산사태가 발생할 위험이 있었다며 태양광과 산사태의 직접 연관성은 없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4대강 사업에 대해 2013년 ‘추가 준설이 없어도 홍수에 대처 가능하다’는 내용과 2018년 ‘4대강 사업의 홍수 피해 예방 가치는 0원’이라는 감사 결과를 두 차례나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왜 뚜렷한 근거도 없이 연속된 재난으로 지친 국민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캐나다의 정신의학자 도널드 이웬 캐머런은 1950년대 뇌가 충격을 받아 기억을 잃고 백지 상태를 만들면 새로운 이념을 주입해 완전히 다른 인간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냉전시대 당시 공산주의자를 자본주의자로 탄생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기꺼이 그의 실험을 지원했다. 그는 전기 충격과 약물로 사람의 뇌를 유아기 상태로 퇴행시켰다. 그리고 새로운 생각을 집어넣었다.

지금도 여러 이익집단이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그들은 국민들이 호우와 산사태로 삶의 터전을 잃고 충격에 빠져 있을 때 태양광 얘기를 들고 나왔다.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를 반대하는 자신들의 주장을 그들의 무의식에 주입할 찬스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8월 대한의사협회 소속 의사들은 매일 코로나19 감염자가 수백 명 나오는 걸 보면서도 집단 휴진에 나섰다. 의료가치를 지키겠다는 나름의 이유를 내세웠지만 결국 공익보다는 의료 수가 인상 등 집단의 이익을 관철시킬 수 있는 기회로 봤기 때문이라고 본다.

국민들은 고통받고 있는데도 국가의 정책 방향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하고, 재난을 이용해 돈을 벌고 특권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를 ‘재난 자본주의’라 부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한복판에 서 있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지금은 기후재난 상황이다. 세계 7위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으로서 우리는 이 재난의 공모자다. 국민이 재난으로 힘들어 하는 상황을 이용하려는 집단의 공격을 막으려면 발 빠르게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이 기후비상사태임을 선언하고, 기후재난의 해결사가 되기 위한 정책들, 예컨대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 50% 감축' 같은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현숙 그린피스 동아시아 프로그램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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