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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부동산 정책과 그 적들

입력
2020.08.10 18:00
수정
2020.08.10 18:37
26면
0 0
장인철
장인철수석논설위원

부동산정책 격동에 사회갈등 또 증폭
사적 이해에 편승한 정치인들 한심
정략적으로 정책 편 정권 잘못 심각

경기 과천시민 3,000여명이 8일 오후 과천중앙공원 분수대 앞에서 장맛비를 무릅쓰고 정부과천청사 부지 택지개발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 과천시민 3,000여명이 8일 오후 과천중앙공원 분수대 앞에서 장맛비를 무릅쓰고 정부과천청사 부지 택지개발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적(敵)’이라는 명사는 ‘서로 싸우거나 해치고자 하는 상대’라는 본뜻과 함께, ‘어떤 것에 해를 끼치는 요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지난 4일 정부의 서울 주택 공급 방안이 나온 뒤, 여기저기서 불거진 반발과 저항, 그리고 재빨리 거기에 편승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서 사회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사사로운 적’들의 양상을 새삼 생각하게 됐다.

‘사사롭다’는 건 문제를 바라보는 제 각각의 사적이고 주관적인 입장을 의미한다. 사회 문제를 공동체 차원에서 바라보고, 공익을 추구하는 공공적 입장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보면 되겠다. 사회 문제라는 게 결국 사적인 문제들의 총합인 만큼, 모든 사회 문제엔 사적인 이해가 얽힐 수밖에 없다. 다만 건강한 사회라면 공익을 배려해 사적인 이해를 절제하는 ‘공동체 의식’이 제대로 작동할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세제나 ‘8ㆍ4 부동산 공급대책’ 등을 둘러싼 최근 진통을 보면 우리 사회가 공동체 의식은커녕 사분오열돼 제 각각 잇속만을 좇아 뒤엉키는 ‘진흙탕 속의 개 싸움(泥田鬪狗)’판으로 전락해버린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8ㆍ4 대책만 해도 국민 다수가 촉구한 공익 정책이었다. 부동산시장 과열과 집값 앙등에 맞선 정부 대책은 그동안 수요 억제를 겨냥한 규제 일변도의 불균형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전문가든 야당이든 입만 열면 “실수요에 부응하는 공급책이 나와야 한다”고 다그쳤다. 하지만 막상 공급안이 발표되자 사방팔방에서 반발과 저항이 불거졌다. “아파트 더 지어 우리 동네 주거환경을 해치는 건 반대”라는 식의 님비(NIMBY) 행태가 주조였다.

지난 주말, 장맛비를 무릅쓰고 거리로 나선 건 정부과천청사부지 개발 계획을 성토한 수천 명의 과천 주민뿐만 아니었다. 서울 여의도에선 부동산 세제 등에 반대하는 시위가 계속됐고, 노원구에선 그린벨트인 태릉 골프장 택지 개발에 반대하는 지역민들이 집회를 가졌다. 주민들이 정책 피해를 호소하며 거리로 나서는 걸 공동체 의식 박약이라고 욕할 순 없다. 되레 진정한 이해 당사자로서 적극적 의사 표시는 장려돼야 마땅한 면도 있다.

문제는 저변의 사적 이해를 공익적 차원에서 조정하고 통합해 나가야 할 책무를 진 정치인들의 행태다. 과천 시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인데도 개발 계획이 발표되자 즉각 결사 반대를 선언하고 길거리에 천막부터 쳤다. ‘정의의 투사’ 이미지를 구축해온 또 다른 여당 소속 국회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에 임대아파트가 건설된다고 하자 “강남 집값 잡겠다고 내 지역구를 희생양으로 삼냐”며 반발해 물의를 일으켰다.

하지만 주민과 정치인들을 이기적 싸움판으로 내몬 최악의 ‘사사로운 적’은 현 정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부터 다주택 투기 근절책에 이르는 경제ㆍ사회 정책에서 현 정권은 ‘공정과 정의’를 전가의 보도처럼 앞세웠다. 그럼에도 하나같이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과 스트레스를 준 건 앞세운 가치와 달리 실제로는 인기에 영합해 집권을 연장하려는 정치적 사욕에 휘둘려 무리하게 정책 가속 패달을 밟았기 때문이다.

옛 중국 양나라 혜왕은 맹자에게 “당신이 성현이라니, 우리나라에 어떤 이(利)로움을 줄 수 있겠소”라고 빈정거린다. 그러자 맹자는 즉각 “어찌 하필 이로움만 구하느냐”며 일갈한다. "왕이 나라의 이로움만 추구하면, 대부들은 제 일가의 이로움만 좇을 것이고, 백성들 또한 제 한 몸의 이로움만 따를 것이니, 위 아래가 모두 제 잇속만 찾는 식이 되면 나라가 위기에 빠진다(上下交征利而國危矣)"며 ‘왕도’를 좇으라고 했다.

'도(道)'를 앞세웠으되, '이(利)'에 휘둘려 사회를 온통 싸움판으로 만든 정권이 이 만신창이를 어떻게 수습할지 걱정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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