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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여당에 필요한 관용과 자제

입력
2020.07.01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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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 반대한 민주당이 상임위원장 독식
야당 태업도 문제지만 거여의 협량도 아쉬워
더뎌도 관용과 자제가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127년 만에 처음으로 흑인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럭비팀 주장을 맡았던 시야 콜리시가 2019년 5월 럭비월드컵에서 승리한 뒤 우승컵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127년 만에 처음으로 흑인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럭비팀 주장을 맡았던 시야 콜리시가 2019년 5월 럭비월드컵에서 승리한 뒤 우승컵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원 구성 전쟁이 끝났다. 상임위원장 배분 결과는 18대 0. 아이러니다. 전통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은 영역을 불문하고 승자 독식을 반대해 온 정당이다. 의석 수에 따른 상임위원장 배분 전통은 1988년 여소야대였던 13대 국회의 산물이다. 만년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이 민주화 이후 의회 권력을 내려놓으면서 야당들과 합의한 대화와 타협 관행이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는 정당에 의해 깨진 것이다.

결국 법사위원장을 둘러싼 싸움이었다. 그런데 법사위원장이 국회 운영의 기본 룰을 뒤엎으면서까지 맞바꿀 자리였을까. 20대 국회 때 민생법안마저 발목 잡은 야당 법사위원장 횡포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민주당 문제 의식에 공감한다. 하지만 20대 국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176석 민주당은 이미 18개 상임위에서 과반을 확보, 마음만 먹으면 표결로 안건을 처리할 수 있다. 대안 제시 없이 발목만 잡았다고 21대 총선에서 호되게 심판 당한 미래통합당이 과거처럼 법사위를 차지했다고 몽니를 부릴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초반부터 수의 우위를 앞세워 법사위원장 탈환을 밀어붙였다.

법사위원장을 갖지 못할 바엔 차라리 민주당 독식 구도를 만드는 게 대선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김종인 통합당 대표의 노회함도 협상 결렬에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협상에서 야당의 태업(怠業)보다 더 도드라진 건 상대를 포용하지 못하는 거대 여당의 협량(狹量)이었다. 과장이 섞였겠지만, 원 구성 협상에 나선 제1야당 원내대표 입에서 “온갖 굴욕과 모욕을 당했다”는 토로가 나온 건 민주당이 야당이었던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하반기 법사위원장은 2022년 대선에 승리한 당이 가져가자는 민주당의 중재안도 마찬가지다. 통합당의 반대를 ‘대선에서 이길 자신이 없는 패배주의’라고 규정한 건 요즘 말로 하면 ‘야당 인지 감수성’ 부족이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민주당 대표였을 때 했던 얘기가 생각난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밥 먹자고 하면 이건희 같은 재벌도 시간 내서 가야 한다. 유일하게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야당 대표밖에 없다.” 아무리 숫자가 적다고 해도 막강한 대통령 권력 체제에서 야당의 존재감은 바로 그런 거다.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이견과 반대를 허용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요체다.

원 구성 전쟁은 끝났지만 지금부터가 더 걱정이다. 친문 지지층은 이번에 실력 발휘 못하면 무능한 집단으로 비친다며 민주당에 속도전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일방통행식 입법 폭주는 민주당에 오히려 독이 될 공산이 크다. 참여연대도 사실상 실패라고 선언한 부동산 정책, 청년의 분노를 산 비정규직 정책, ‘노예화한 평화’로 조롱받는 남북관계는 민주당이 확증편향과 집단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경고음이다. 국민이 집권 여당에 기대하는 건 이견과 반대까지 포용해 실사구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다. 결국 협치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더디지만 관용과 자제가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현실을 변화시킨 사례는 적지 않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럭비팀 스프링복스는 그 중 하나다. 25년 전 남아공에서 럭비는 인종차별의 상징이었다. 어릴 적 럭비를 배울 수 있는 건 사립학교로 간 소수 백인 자녀뿐이었고, 프로리그 선수도, 관중도 백인 일색이었다. 1994년 넬슨 만델라가 집권하자 남아공체육위원회는 스프링복스 팀이름과 유니폼, 엠블럼을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만델라의 생각은 달랐다. 오히려 1년 뒤 안방에서 열린 럭비월드컵에서 이길 수 있도록 스프링복스를 전폭 지원했다. 스프링복스 유니폼을 입고 나온 만델라가 백인 주장에게 우승 트로피를 건네는 모습은 흑백 통합의 상징이었다. 스프링복스는 지난해 127년 만에 처음으로 흑인이 주장을 맡아 또다시 럭비월드컵 우승을 거머쥐었다. 스프링복스가 사라졌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만델라가 보여 준 관용과 자제를 민주당은 되돌아보기 바란다.


김영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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