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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100년 전 세계에서 5,000만명 안팎의 사망자를 낳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상 최악의 인플루엔자 팬데믹을 일으킨 스페인독감은 크게 3차례 파도를 타고 유행했다. 2009년 신종플루와 같은 H1N1 계열의 이 인플루엔자는 1918년 초봄 미국에서 번진 뒤 5, 6월에 유럽으로 건너갔다는 주장이 있다. 이 1차 대유행에 이어 2차 유행은 그해 가을 시작돼 이듬해 초까지 이어진다. 한국, 일본 등 동북아 지역에서 이 감염병의 존재를 알게된 것은 2차 유행 때다.
□ 김택중 인제대 교수의 '1918년 독감과 조선총독부 방역정책'을 보면 식민지 조선에서 스페인독감 유행을 인지한 것은 그해 9월께다. 10월쯤부터 매일신보 등 신문에서 독감 유행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당시 조선 인구는 1,700만명이었는데 1919년 3월 조선총독부 집계를 보면 그때까지 환자가 755만여명, 사망자는 14만명 남짓이다. 1919년 1월 진정세이던 독감은 그해 겨울 또 유행한다. 2차 유행 때 통계는 알기 어렵지만 당시 조선총독부관보에 실린 "이번 유행성 독감이 작년보다 더 악성"이라는 경기도지사의 주의문으로 미루어 피해가 더 컸을 가능성이 있다.
□ 일본도 1918년 8월에 스페인독감의 1차 유행이 시작됐다. 이듬해 9월 2차 유행이 시작되기 전까지 환자는 2,117만명, 사망자는 25만명을 넘었다. 2차 유행 때는 환자가 241만명으로 크게 줄었는데도 사망자가 12만명이나 됐다. 사망률이 5.29%로 1차의 4배를 넘는다. 정확한 이유는 알기 어렵지만 2차 때는 1차 유행 때 감염이 심하지 않았던 지역에서 주로 발생해 의료체계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때문일 수도 있고, 인플루엔자가 더 '악성'으로 변이했을 수도 있다.
□ 코로나19 발생 6개월만에 전세계 확진자가 1,000만명을 넘어섰다. 중국과 서유럽은 진정 국면이지만 미국은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고, 겨울이 다가오는 남미는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 등 동아시아는 사정이 낫지만 경제 회복을 위한 거리두기 완화 이후 환자 증가 경향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오는 가을 이후 인플루엔자 유행기에 다시 코로나 유행이 닥치면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다. 스페인독감의 경우처럼 바이러스가 악성으로 변이라도 하면 문제는 더 커진다. 탄력적 거리두기 전략, 의료체계 보완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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