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할 일을 떠넘기며 정의연 ‘과잉 대표성’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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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할 일을 떠넘기며 정의연 ‘과잉 대표성’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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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4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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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운동, 역사 앞에 서다] <2>정부도 위안부 문제 방치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가운데)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 한국 국민으로는 최초로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정의기억연대 제공

이용수(92) 할머니의 공개 비판으로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논란에 휩싸였고 결국 검찰 수사까지 받고 있지만 이런 책임을 오롯이 정의연에 지울 수 있을까. 30년에 걸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이후 3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 정부는 이렇다 할 해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앞장서서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도 아니다.

정부가 외교적 분쟁 우려 등을 이유로 위안부 문제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는 동안 정의연과 그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국내외를 오가며 고군분투를 해야 했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을 살피고 일본 정부의 반성까지 이끌어 내야 하는 시민단체 역할 이상의 무게를 짊어졌다. 전문가들이 “후원금 유용 의혹 등 정의연 내부의 문제와 별개로 정부가 먼저 자성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주요 기점마다 소통ㆍ이해 놓친 정부 

1992년 한국 정부가 진상조사결과(일제하 군대위안부 실태조사 중간보고서)를 발표했을 때부터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태도가 안일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 보고서는 정부의 위안부 관련 첫 공식문서이자 중요한 역사ㆍ외교적 근거였지만 피해자 증언이 구체화되지 않는 등 내용이 면밀하지 못했던 탓이다. 대부분의 분석이 일본 측이 전달한 사료에 기반했다는 것도 한계였다. 9년 뒤인 2001년 위안부 피해자 설문조사를 토대로 발간한 ‘일본군 위안부 증언 통계 자료집’ 역시 정부가 아닌 정대협 부설 전쟁과여성인권센터가 주도했다.

일본에게 보상을 받겠다는 일부 피해자들의 사정을 정부가 ‘도덕적 우위’를 강조하며 외면한 점도 갈등을 키웠다. 위안부 문제가 한창 주목을 받던 1990년대 초 정부는 일본과 비교해 도덕적 우위를 점해야 한다며 일본 측의 금전 보상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정부가 지원금을 주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일본 민간기금을 받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기도 했다. 정대협이 1997년 일본 아시아여성기금의 지원금을 받은 심미자 할머니 등을 배제하며 균열이 시작됐듯 정부 역시 일본 기금을 받은 할머니들을 끌어안지 못한 채 되레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면서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2015년 12월 2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일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에서 윤병세(오른쪽) 당시 외교부 장관이 합의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일본 측으로부터 위로금이 아닌 법적 배상을 받아야 한다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졌으나 정부는 방관으로 일관했다. 예상치 못한 법적 분쟁이 대두될 수 있고 무엇보다 외교관계가 불편해진다는 이유였다. 오랜 기간 정부를 향한 불신만 쌓아 온 피해자들은 2006년 급기야 “정부가 대일외교를 통한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아 행복추구권을 침해 당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독도나 교과서 문제와는 달리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피해자 목소리를 듣고 조치에 나서지 않거나, 때로는 정대협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변인 역할을 하며 문제를 키웠다”고 꼬집었다.

헌재마저도 2011년 8월 해당 헌법소원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노력 미흡을 인정했다. 당시 헌재는 “헌법과 한일협정 내용에 비춰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에 관해 양국 간 분쟁이 존재하는 경우 해결 절차로 나아가는 것은 작위의무(적극적 행위를 할 의무)”라며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은 헌법상 재산권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신체의 자유를 회복한다는 의미를 갖는데, 이에 대한 국가의 부작위는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달 25일 오후 두 번째 기자회견을 연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입장 발표에 앞서 숨을 고르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단체 규모 커지는데 관리ㆍ감독은 부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들과 정부 간 소통 부재를 재확인시켰다. 동시에 정대협에 대한 시민사회의 기대와 의존은 더욱 커졌다. 한일 합의를 반대하며 출범한 정의기억재단이 정대협과 통합해 2018년 7월 정의연으로 거듭나자, 위안부 문제 해결에 앞장선 정의연의 대표성은 더욱 짙어졌다. 다수의 위안부 문제 연구자들은 “한일 합의와 화해치유재단 사태를 거치면서 정부의 대응 미숙이 재차 논란이 된 후 정의연이 ‘과잉 대표성’을 갖게 된 게 현재의 정의연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라고 분석한다.

위안부 문제 해결의 축이 정의연으로 공고해지며 국가보조금 규모도 덩달아 불어났지만 정작 정부는 맡겨만 놓고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정의연이 국세청에 공시한 ‘공익법인 결산서류’에는 지원금 수혜 인원이 999명, 9,999명 등으로 기재되고 이월 수익금 22억여원이 반영되지 않는 등 부실한 부분이 수두룩하지만 정부는 알아채지 못했다.

지난해 서울시와 여성가족부에서 받은 지원금이 7억여원에 달하는 정의연의 회계 부실은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달 기자회견을 한 이후에야 공론화됐다. 익명을 요청한 한 회계사는 “아무리 위안부 문제라도 무조건적인 지원 방침을 유지하기보다는 지원금 사용 관련 교육 등을 병행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의연이 시민단체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한계를 정부가 직시하고, 위안부 문제 해결의 주체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십 년간 위안부 관련 연구를 해온 강정숙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원(전 한국정신대문제연구소장)은 “이번 논란을 위안부 문제의 주축은 정부여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면서 “단체 입장을 경청하면서도 외교적 해법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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