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곳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이다. 할리우드 거리 복합쇼핑몰 안에 있는 이곳은 TV중계에 적합하도록 설계됐다. 2001년 문을 열어 2002년부터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이어지고 있다. 개관 당시 명칭은 코닥극장이었다. 필름 제조사 이스트먼 코닥이 7,500만달러를 내고 명칭 사용권을 획득했다. 매년 세계 영화팬의 눈이 쏠리는 곳이니 거액을 내면서까지 욕심 낼만도 했다. 하지만 이스트먼 코닥이 2012년 파산보호신청을 하면서 코닥극장은 돌비극장으로 바뀌었다.
□ 돌비극장 인근에는 유서 깊은 이집트극장과 중국극장이 있다. 이집트극장은 1922년, 중국극장은 1927년 각각 문을 열었다. 고대 이집트풍 장식으로 한껏 멋을 낸 이집트극장은 금세 할리우드 명물로 떠올랐다. 이집트극장의 성공에 기대어 중국극장까지 만들어졌다. 두 극장은 한때 할리우드 신작을 최초 상영하는 곳으로 명성을 누렸다. 중국극장에서 ‘스타워즈’(1977)가 처음 상영됐고,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세 차례 열렸다. 이집트극장은 1993년 LA 역사문화유산이 됐다. 멀티플렉스가 등장하며 두 단관 극장은 퇴락했으나 여전히 할리우드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 지난달 29일 미국 연예 전문 매체 버라이어티 등에 따르면 동영상스트리밍업체(OTT) 넷플릭스가 이집트극장을 인수했다. 주로 예술영화가 상영되는 현재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넷플릭스 영화를 소개하는 극장으로 사용할 방침이라고 한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뉴욕 유명 단관 극장인 파리극장을 장기 임차해 자사 영화 ‘결혼이야기’와 ‘아이리시맨’ 등을 처음 공개했다. 지난해 8월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파리극장은 넷플릭스와 손잡고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넷플릭스는 이집트극장 인수로 뉴욕과 LA의 전설적인 극장을 손에 넣게 됐다.
□ 넷플릭스는 자사 영화를 온라인과 극장에서 동시 공개하는 전략을 내세워 미국 극장사업자들과 대립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90일가량 극장 상영 후 주문형비디오(VOD) 등을 출시하는 할리우드 기존 영화 배급사들과 다르니 극장사업자들에게 미운 털이 박힐 만했다. 넷플릭스의 이집트극장 인수를 보며 코로나19로 신음하는 극장 사업자들의 심정은 어떨까. 필름시대가 저물면서 이스트먼 코닥이 몰락하고, 코닥극장이 돌비극장으로 바뀌던 모습을 보는 듯할 것이다. 영원한 강자가 없듯, 변치 않는 게임의 법칙도 없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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