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이용수씨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ㆍ정의기억연대(정의연)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정대협ㆍ정의연의 부실 회계관리와 두 단체의 ‘아이콘’인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자의 도덕성 문제가 집중 부각되고 있다. 30년 정대협 운동의 성과는 지키되, 책임질 건 책임지고 고칠 건 고쳐야 할 중대 사안이다. 대의가 아무리 중요해도 이를 이루는 과정의 ‘정의’가 흔들리면 모든 것이 어그러지니까.
하지만 이 논란의 뿌리에는 다른 문제가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바로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의 폐해다. 왜 피해 당사자와 시민단체가 목소리를 높여왔는지, 왜 그들이 지지를 받았는지, 그래서 정대협과 윤미향의 오류는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따지다 보면 역대 정부의 ‘과거사 외교’ 무능과 맞닿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은 웃게 하고, 피해자와 국민은 분열시켰던 2015년 12ㆍ28 합의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점은 자명하다.
1991년 김학순씨가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최초로 공개 증언하기 전까지 50년 가까이 정부는 피해자 곁에 없었다. 93년 김영삼 정부가 ‘고노담화’를 통해 수면 위 외교 현안으로 끌어내긴 했지만 더 나가지는 못했다. 다음 정부들의 노력도 허사였다. 결국 정대협이 목소리 높여 싸우는 사이 2011년 8월 헌법재판소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주문하는 위헌 결정을 내렸다.
국면은 바뀌었지만 과거사 외교 전략은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초인 2013년부터 “역사를 직시하라”며 일본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압박 수단도 없으면서 강경 일변도였다. 2014년 세월호 7시간 보도 관련 일본 산케이신문 기자 검찰 기소 등 무리수만 이어졌다. 일본은 미일ㆍ중일 관계를 강화하며 버텼다. 그러다 결국 ‘타협하라’는 미국의 외교적 압박, 한일 수교 50주년이라는 명분에 밀려 합의문이 발표됐다.
도덕적 우위에 서서 차분히 일본을 압박, 설득하며 풀어야 할 문제인데도 연말 시한에 쫓겨 서두르는 바람에 협상에선 완패했다. 여론 수렴도 부족했다. 실책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독단적이었고, 외교부는 무력했다. 피해자와 시민단체 핑계를 댈 일이 아니었다.
잘못된 합의라는 여론이 거세지자 정대협은 이후로도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다. 정대협 후신 정의연은 피해자 지원, 진상 규명, 교육, 기림, 국제연대 등의 미션을 내세웠다. 현실적으로 재정의 문제, 권한과 목적에 대한 오해가 파생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국가가 자신의 의무를 방기하다 보니 생긴 일이기도 했다.
위안부 이슈는 과거사 피해자 신원(伸寃)만 걸려 있는 게 아니다. 한일관계는 물론 미국, 중국도 이해가 얽힌 외교안보 핵심 이슈이기도 하다. 시민사회의 지지를 안고 국가가 풀어가야 할 난제인데 이번 논란으로 힘은 더 빠지게 생겼다.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챙겨야 한다. 먼저 국가가 책임져야 할 몫과 시민사회가 맡을 수 있는 부분을 나누자. 외교의 경우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문제 제기를 하되 경제 문화 안보 등 일본과 협력할 문제는 함께 머리를 맞대는 ‘투트랙’ 전략 외에는 방법이 없다. 일본이 응하지 않더라도 한일 미래세대 역사교육, 역사공동연구위원회 설치 같은 일을 정부가 먼저 챙겨 명분을 쌓을 필요가 있다. 정의연 역시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소중히 하되, 역사 속 오류와 실천 속 과오는 없었는지 끊임없이 되돌아봐야 한다.
“한 번 일어났던 일은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유태인수용소를 경험한 작가 프리모 레비는 불행한 과거를 넘어선 기억과 반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밝혔다.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윤미향ㆍ정대협 논란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국가와 시민사회의 성찰이 다시 한 번 필요한 시점이다.
정상원 정치부 외교안보팀장 orn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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