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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스톡데일 패러독스

입력
2020.05.12 18:00
수정
2020.05.12 18:1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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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미국 전쟁 영웅 제임스 스톡데일. 오른쪽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왼쪽 미국 전쟁 영웅 제임스 스톡데일. 오른쪽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제임스 스톡데일(1923~2005년)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미군 장교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1965년 자신이 몰던 전투기가 격추돼 호아로(Hoa Lo) 수용소에 갇혔다. 7년 반 수감 생활을 한 스톡데일은 90cmx 275cm 독방에 4년 동안 갇혀 살았고 숱한 고문을 당했다. 수용소 측이 전쟁 포로들을 잘 대우해 주고 있다는 선전 영상을 찍으려고 하자 자해를 하면서 맞서기도 했다. 포로에서 풀려난 스톡데일은 중장으로 예편했으며, 1992년 대선에서 제3후보 로스 페로의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스톡데일은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본 태도를 살아 남은 비결로 꼽았다. 다른 동료들은 “나는 크리스마스 전에는 나갈 수 있을 거야” “추수감사절 이전에는 나갈 거야”라고 ‘희망고문’만 하다가 다시 크리스마스를 맞자 상실감 속에 죽어갔다고 그는 증언했다(제임스 콜린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스톡데일은 “결국엔 이기겠다는 믿음과 현실의 가장 가혹한 사실들을 절대로 혼동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미래를 낙관하되 현실은 냉정하게 바라보라는 의미에서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표현을 콜린스는 처음 사용했다. 우리말로 바꾸면 ‘낙관적 비관주의’ 정도 된다.

□지난 8일 미래통합당 원내사령탑에 오른 주호영 원내대표가 당내 경선 토론회에서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언급했다. 그는 “위기의 순간 스톡데일 리더십을 떠올린다”며 “장기적으로는 성공한다는 희망을 가지되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고 처절한 노력을 할 때 다 같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당선 일성으로 “패배 의식을 씻어내는 것이 급선무”라면서 “실패한 조직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통합당은 이번 총선에서 기록적 참패를 기록했다. 20대 총선, 19대 대선, 지방선거의 실패에 이은 4연패다. 박근혜 탄핵 사태에도 반성하지 않는 전도된 주류 의식, 고도성장과 반공에 머물러 있는 둔감한 시대정신, 감수성과 공감 능력 부족 등 패배 원인을 바로잡는 보수 재건 작업이 단시간에 이뤄지긴 어렵다. 긍정적 자세는 언제나 중요하지만, 지금은 희망과 미래라는 단어를 꺼내기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비관만 하고 있을 수도 없다. 낙관하되, 현실을 직시하라. 아직 갈 길이 먼 통합당의 생존 지침으로는 제격 아닌가 싶다.

김영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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