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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기계를 만들려는 인공지능(AI) 개발의 70년 역사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생각하는 기계’의 성립 가능성을 논증한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의 1950년 논문을 필두로 이론적 기반이 다져지고 60년대부터 본격적인 AI 개발의 막이 올랐지만 지금과 같은 발전은 90년대 후반에 와서야 시작됐다.
튜링이 1950년 당대 유력 철학 학술지 ‘마인드’에 기고한 ‘계산하는 기계와 지능’은 비록 ‘인공지능’이란 단어를 쓰진 않았지만 AI의 이론적 기초를 닦은 기념비적 논문으로 평가된다. 이른바 ‘튜링 기계’를 고안해 현대 컴퓨터의 원형을 제시한 1936년 논문과 유아의 뇌를 모사해 학습 가능한 인공신경망을 창안한 48년 논문을 발판 삼아, 튜링은 기호 형태의 언어로 이뤄지는 명령과 보상ㆍ제재를 통해 기계가 사람에 비견할 학습 능력을 갖출 수 있다고 내다봤다. 56년에는 미국 다트머스대에서 열린 전문가 세미나에서 ‘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처음 만들어졌다.
AI 개발 붐이 일어난 1960년대 중반만 해도 머지 않아 인간 수준의 AI가 나올 거란 기대가 높았다. 이 분야 선구자로 꼽히는 허버트 사이먼 미국 카네기공과대(현 카네기멜런대) 교수는 “1985년까지 기계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고, 미국의 경우 국방부 차원에서 엄청난 자금을 AI 분야에 투자했다. 언어 번역, 영상 처리, 텍스트 이해, 음성 인식, 로봇 제어, 머신러닝 등 세부 목표도 이때 이미 세워졌다.
하지만 이후 30년 가까이 성과는 부진했다. 초기 AI 연구개발자들은 인간이 어떻게 언어나 감각을 사용하는지에 대한 수학적 모델을 먼저 만들고 이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즉 인간 지능의 작동 원리를 기계에 복제하려는 ‘톱다운’ 방식을 택한 것이다. 허나 인간의 능력을 일일이 시뮬레이션할 만한 지식이 부족했고 이를 뒷받침할 컴퓨터 하드웨어 성능도 모자랐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70년대 초반과 80년대 후반에는 투자와 관심이 말라붙는 이른바 ‘인공지능의 겨울’이 닥치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 AI 개발자들은 수십년 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톱다운 방식 대신 보다 현실적인 세부 과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인간을 총체적으로 닮은 AI 개발이 요원한 만큼 개별 과제를 풀어가며 AI를 고도화하자는 ‘보텀업’ 방식으로 일대 전환한 것이다.
선택된 방법론은 머신러닝(기계학습)이었다. 기계가 입력된 빅데이터에서 유용한 패턴(통계적 상관관계)을 찾아내며 스스로 학습해 나가는 방식으로, 컴퓨터 성능의 비약적 발전과 디지털화 확산에 따른 데이터량 급증이 그 토대가 됐다.
상품 추천 시스템을 시작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음성 인식, 번역, 손글씨 인식 등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가 쌓이면서 AI 개발자들은 데이터가 이론적 모델보다 더 강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별 알고리즘(문제 해결 절차)은 단순한 통계 함수 수준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하나의 소프트웨어에 묶여 수많은 데이터를 동시 처리하면 마치 지능적 존재마냥 행동했다.
다양한 머신러닝 기법 중 최근 AI 시장을 주도하는 건 딥러닝이다. 여러 겹의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을 접목한 딥러닝은 인간의 개입 없이 데이터의 ‘특징’을 스스로 파악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2012년 구글과 앤드류 응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만든 알고리즘이 이미지 학습을 통해 사람과 고양이 사진을 분류하는 데 성공한 일은 딥러닝의 대세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인간이 지침을 주지 않는 한 고양이 고유의 특징을 잡아내기 힘들었던 종전 머신러닝 방식의 한계를 돌파해 AI가 인간처럼 ‘추상화’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AI의 도약은 역설적으로 인간 두뇌를 닮은 복잡한 컴퓨터 알고리즘 설계를 포기한 결과였다. 알고리즘은 단순하게 짜되 대신 많은 정보를 읽히는 머신러닝 방식으로 전환하자 비로소 컴퓨터가 지능적 작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역발상은 코로나19의 충격을 딛고 진일보한 사회를 디자인하는 과정에 꼭 필요한 덕목일 터이다.
이훈성 산업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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