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벽두부터 ‘제3차 세계대전(World War III)’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가 전세계 온라인을 휩쓸었습니다. 이란 최정예 군사조직인 혁명수비대(IRGC)의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총사령관이 미군의 공습으로 3일(현지시간) 사망하고, 이란 정부에서 즉각 피의 보복을 선언하면서죠.
‘세계의 화약고’ 중동 정세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접어들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성명서를 내고 “세계는 걸프 지역에서의 또 다른 전쟁을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했어요. 1990년 걸프전을 염두에 둔 발언인데요. 미국인들, 특히 젊은 남성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세계대전’을 검색하거나 징집 관련 사이트를 마비시키는 등 전쟁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과연 미국과 이란 사이의 전운은 실제 전면전으로 번질까요. 이란 정부가 핵프로그램 동결 및 제한 규정을 더 이상 지키지 않겠다는 폭탄 선언까지 하면서 양국 갈등은 국제 ‘핵 위기’까지 촉발시킬 수 있게 된 상황인데요. 중동은 물론 지구촌 전체의 위기로 치달을 가능성에 새해를 맞이한 세계의 시선이 두 국가를 향해 쏠리고 있습니다.
◇미국은 왜 이란을 공격한 거야?
미국 정부에서는 자국민에 대한 임박한 공격을 막기 위해 ‘최고 테러리스트’인 솔레이마니 총사령관을 제거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하지만 사실 핵 개발로 미국을 비롯한 이스라엘 등 주변국과 꾸준히 충돌을 빚는 와중에 1998년 쿠드스군 총사령관 자리에 오른 솔레이마니가 미국의 제거 대상이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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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암살의 결정적인 도화선은 2019년 12월 31일 친(親)이란 시위대의 이라크 미국 대사관의 습격사건이라는 평가입니다. 트럼프 정부가 2018년 오바마 정부와 이란의 핵합의(JCPOAㆍ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공식 파기한 후 경제적 제재를 재개하면서 이들 사이의 긴장은 점차 높아져왔어요. 이란은 지난해 앞바다(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군 무인기(드론)를 격추하거나 영국 유조선을 나포하는 등 도발을 지속해왔고, 연말엔 미국대사관 습격까지 일어났죠. 미국은 이에 보복을 결심, 총사령관 암살이라는 과감한 조치에 나서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이란은 가만히 있겠대?
이란 정부는 즉각 “미국이란 악(惡)한 존재의 종말이 시작됐다”며 군사적 대응을 천명했어요. 이란의 수도 테헤란 남쪽에 위치한 시아파 성지 쿰의 잠카란 모스크에는 복수를 의미하는 대형 붉은 깃발이 걸렸습니다. 이란의 호세인 데흐건 최고지도자 군사 수석보좌관은 미국 CNN방송에서 “이란의 대응은 틀림없이 군사적일 것이고 미국의 군사시설이 대상”이라면서 “어떤 미군 참모도, 미국의 정치센터도, 미군 기지도, 미국 선박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죠.
보복은 이미 시작됐어요. 4일(현지시간) 미군이 주둔하는 이라크 북부 알발리드 공군기지와 바그다드 미국 대사관을 겨냥한 포격이 일어난 거죠. 이란 국민들 사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제거를 위한 현상금 8,000만 달러(한화 악 935억원)를 위한 모금운동도 벌어지고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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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전쟁 나는 거야? 세계대전 얘기도 들려
양국 간 무력 충돌이 불가피한 가운데 이제는 언제 어디서 터지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상황입니다. 미국은 보복 공격 시 이란의 52곳을 이미 공격 목표 지점으로 정해놨다고 밝히기도 했어요. 52란 숫자는 1979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에서 납치된 미국인 인질 수에서 따온 것인데요. 사실상 준전시 체제에 돌입 한거죠.
미국 일각에서는 ‘제3차 세계대전’ 공포가 급속히 확산했어요.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WorldWarThree, #WWⅢ 등의 해시태그가 넘쳐나고 있고요, 미국 70여 곳의 도시에서는 전쟁 반대 시위를 열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병무청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미국 선발징병시스템(SSS) 사이트는 접속이 폭주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미국 젊은이들이 자신이 징집 대상인지 확인해보려 한 탓이라네요. 김동석 미주 한인유권연대 대표는 7일 CBS라디오에서 “전쟁이라는 공포가 미국 시민 사회에 지금 유포돼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어요.
정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는데요, 미국 외교 관계위원회 소속 상원 의원인 크리스 머피(민주당)는 “이번 사건이 ‘대규모 지역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고 경고에 나섰죠.
◇다들 안 말리고 뭐 하는 거야?
무력충돌을 막으려는 움직임은 시작되고 있어요. 미국 민주당은 상원에 대이란 적대행위에 앞서 의회 승인을 거치도록 하는 결의안을 발의했어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미국의) 군사 모험주의는 수용할 수 없다”며 반대 목소리를 냈죠. 프랑스와 독일 등은 중재에 돌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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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까지 전면전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는 5일(현지시간) 영국 선데이타임스 기고문에서 “이라크 내전의 가능성은 엿보이지만 3차 세계대전은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전망했어요.
다만 핵위기와 국제 대리전, 중동 역학구도 변화 등 다양한 전선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특히 이란이 명목상 유지해온 핵 합의를 사실상 포기하겠다고 밝힌 만큼 본격적인 핵 개발 작업에 착수할 전망인데요, 이를 시작으로 지구촌의 ‘핵 도미노’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와요. 이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제3차 세계대전에서 무슨 무기가 쓰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제4차 세계대전에선 돌멩이와 나뭇가지가 무기가 쓰일 것”이고 한 얘기도 최근 다시금 주목 받고 있죠. 3차 세계대전이 그만큼 파괴적이 될 거라는 의미였는데요. 더 늦기 전에 중동지역 정세 안정을 위한 국제적 노력, 서둘러야겠습니다.
☞여기서 잠깐
호르무즈 해협, 왜 시끄러운 건가요?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좁은 해협으로, 세계 원유 공급량의 30%가 이곳을 지나며 한국으로 들여오는 원유의 70~80%가 이곳을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특히 유조선이 실제로 지나갈 수 해협의 폭은 3㎞ 남짓에 불과한데요, 그 중 가장 좁은 구간이 국제법상 이란의 영해에 속해요. 때문에 이란은 국제적 위기에 처할 때 마다 이 지역을 무기 삼아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위협해왔죠.
미국이 핵협상 파기 선언 이후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수위를 높이자 이 지역에서는 유조선에 대한 피격 등 충돌이 잇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습격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 한국 등 동맹국에 민간선박 보호를 위한 호르무즈 해협 공동방위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하지만 솔레이마니 피격 사건으로 중동 정세가 악화하면서 입장이 난처해졌는데요. 정부는 6일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었지만, 파병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이슈레터>가 마음에 드셨다면 뉴:잼을 구독해보세요.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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