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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펭수야 고마워

입력
2019.12.15 18:00
수정
2019.12.15 19: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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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풍 EBS 캐릭터 펭수, 구독자만 133만

사이다 공감 어록, 직장인들 위로 치유

‘힘내’라는 말보다 ‘사랑해’ 필요한 한국

EBS 캐릭터 ‘펭수’는 귀여운 외모와 당돌한 발언, 공감을 자아내는 어록으로 힘든 이들을 위로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EBS 제공
EBS 캐릭터 ‘펭수’는 귀여운 외모와 당돌한 발언, 공감을 자아내는 어록으로 힘든 이들을 위로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EBS 제공

김명중, 교육방송(EBS) 사장 성함이다. 지상파 방송 3사도 아닌 EBS 대표의 이름을 아는 건 전적으로 ‘펭수’ 덕분이다. EBS가 올해 내놓은 캐릭터 펭수는 방탄소년단(BTS)과 뽀로로 같은 ‘우주대스타’를 꿈꾸며 남극에서 한국까지 헤엄쳐 온 10세 자이언트 펭귄이다. 남극 ‘펭’씨에 빼어날 ‘수(秀)’자를 쓰는 EBS 연습생 펭수가 걸핏하면 소속사 대표를 들먹이는 통에 적잖은 국민이 김명중 석자를 외운다. 펭수는 “사장님이 친구 같아야 회사도 잘된다”는 지론을 펴며 “참치는 비싸, 비싸면 못 먹어, 못 먹을 땐 김명중”이란 시까지 읊는다.

펭수는 초등학생을 겨냥해 기획된 캐릭터였다. 그러나 실상은 20,30대 직장인뿐 아니라 40대 팬도 많다. 하늘을 찌르는 인기에 ‘올해의 인물(동물)’로도 선정됐다. 기업과 정부 부처는 물론, 다른 방송사에서도 섭외를 요청할 정도다. 팬사인회엔 수천 명이 운집한다.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구독자는 133만명을 넘어섰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에세이 다이어리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는 예약 판매만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KGC인삼공사의 정관장 광고에도 나올 예정이다.

펭수 돌풍의 원인으로는 210㎝의 키와 총각김치 체형, 큰 눈에 비해 작은 눈동자 등 귀여운 외모를 빼놓을 수 없지만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어록의 힘도 크다. 특히 동방예의지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돌직구 발언은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재미와 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준다. 외교부 청사 앞에서 만난 강경화 장관에게 “근데 여기 ‘대빵(최고책임자)’ 어디 있어요”라고 묻고, 인사 각도와 기본기를 질책하는 꼰대 선배 ‘뚝딱이’에게 “저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잔소리 하지 말아주세요”라는 장면에선 일종의 카타르시스도 느낀다. 그렇다고 도덕 교과서 같은 말만 하는 건 아니다. “뽀로로랑 사이가 안 좋죠”라는 질문에 “아닙니다, 화해했어요. 하지만 보기 싫은 건 똑같습니다”라고 답하는 솔직함엔 반하지 않을 이가 없다.

특히 펭수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상처 입은 학생과 직장인의 마음까지 치유한다. “처음엔 다들 힘들고 실수도 많아요. 하지만 실수와 힘듦이 결국엔 꽃을 피울 날이 올 겁니다”라고 힘을 준다. “내가 힘든데 힘내라고 하면 힘이 납니까? 아니죠. 힘내라는 말보다 저는 ‘사랑해’라고 해주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사랑합니다. 펭러뷰!(펭수, 아이러브유)”라고 외칠 땐 감동도 받는다.

무엇보다 펭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 상대방도 함께 배려하고 존중할 것을 주문한다. “저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거 하는 거예요. 그게 꿈이고 성공입니다”라며 “눈치 보지 말고 본인 원하는 대로 살면 된다”고 강조한다. “공부를 하는 것보다 행복해지는 게 중요한 것”이라고 일갈한다. 동시에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른이고 어린이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면 되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나 자신한테 대하듯 남들한테도 똑같이 대하라”고 설파한다.

올해 대한민국이 펭수에 열광한 것은 그만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고, 지금 우리 사회가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뉘어 갈등을 겪으며 상처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보면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상대방의 진심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소통의 문을 닫은 채 증오심만 키운 경우가 많았다. 공감하기보단 공격했고, 배려하기보단 혐오했다. 그 사이 골은 더 깊어졌다. 좌우, 남녀, 세대, 빈부, 노사, 여야, 지역 간 충돌과 대립이 모두 그랬다.

더불어 살면서 함께 행복해지려면 상대방을 자신처럼 대해야 한다는 건 10세 펭귄도 아는 진리다. 어려움을 겪는 이웃에겐 ‘힘내’란 빈말이 아닌 ‘사랑해’란 공감이 더 필요하다는 게 펭수가 주는 해법이다. 연말연시라도 나부터 누군가의 펭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펭수야, 올해 우릴 위로해 줘 고마워. 펭바!(펭수 바이, 펭수가 헤어질 때 하는 인사)

박일근 뉴스2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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