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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무도덕적 가족주의

입력
2019.12.15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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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 뒤로 청와대 마크가 보인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 뒤로 청와대 마크가 보인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20대 총선 5개월 전인 2015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는 여당 공천에 개입할 준비에 착수했다. ‘내 사람’으로 공천관리위원회를 짜고, 반드시 당선시켜야 하는 친박 인사와 떨어뜨려야 하는 인사를 적은 ‘살생부’를 작성했다. 지역구는 물론, ‘당선권에 배치하라’며 6명의 비례대표 후보 이름까지 당에 내려보냈다. 유승민 의원 지역구인 대구 동을에는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을 경쟁자로 내세웠다.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박 대통령이 이재만의 연설문을 써서 친전 봉투에 담아 현기환 정무수석을 통해 보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 지난해 6ᆞ13 지방선거를 다섯 달 앞둔 1월, 송철호 현 울산시장과 송병기 부시장이 청와대 균형발전비서관실 행정관을 청와대 인근 보리굴비집에서 만났다. 당시 송 시장은 울산시장 선거 출마를 준비 중이었고, 송 부시장은 그를 돕고 있었다. 회동 이후 송 시장은 “울산에 500병상 이상 규모의 공공병원을 설립하겠다”고 공약했다. 당시 송 시장 말고도 임동호 전 울산시당위원장, 심규명 전 울산 남갑 지역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에 울산시장 후보 공천을 신청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경선 없이 송 시장을 단수 후보로 전략공천했다.

□ 원로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가 ‘무도덕적 가족주의(amoral familism)’를 거론했다. 9일 열린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19주년 기념 학술회의 기조강연에서다. 최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을 한국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이룬 지도자로 평가하면서, 현 민주주의의 위기를 진단했다. 무도덕적 가족주의는 미국의 정치학자 에드워드 밴필드가 이탈리아의 극빈 소도시 몬테그라노의 상황을 일컬은 것으로, 어떤 사회적 자본도 없이 오직 자신과 가족의 이익만 추구하며 가족 이외의 모든 사람을 잠재적 경쟁자이자 적으로 여기는 고립된 가족주의를 말한다.

□ 최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근간인 386세대의 행태를 짚으면서 “오늘날 정치엘리트로 등장한 그들의 권력에 대한 물신적 몰입은 ‘무도덕적 가족주의’라고 부를만한 어떤 현상으로 특징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속속 드러나는 울산시장 선거를 둘러싼 현 정부의 행태에서도 ‘무도덕적 가족주의’가 언뜻 엿보인다. 가족 이익에만 몰두하다간 치명적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 ‘친박’ ‘친문’ 모두 마찬가지인 듯하다.

김지은 논설위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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