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근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액상형 전자담배와 관련, 미국에서 중증 폐 손상과 사망 사례가 증가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의심 사례가 나타났다.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기 전에 보건복지부를 주축으로 기획재정부, 환경부, 여성가족부 등 8개 정부기관이 합동으로 마련한 대책을 지난달 23일 발표했다. 이후 편의점에서 잇따라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히면서 여론의 관심이 급증했다. 한편 과도한 음주를 예방하기 위해 소주병에 연예인 사진을 붙일 수 없게 한다거나, 폭식을 조장할 수 있는 ‘먹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등의 정책방향에 대해 국민 사이에서도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과 ‘정부 규제가 과도하다’는 의견 등 찬반 여론이 팽팽하다.

그러면 우리 국민의 건강수준은 어떨까? 지난 10월에 발표된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 남자의 흡연율은 1998년 66.3%에서 2018년 36.7%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고, 고혈압 조절률도 23.8%에서 73.1%로 크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남자 비만 유병률은 1998년 25.1%에서 2018년 42.8%로 증가했고, 소득수준이나 성별에 따른 건강 수준의 차이도 더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 온 건강정책의 적나라한 성적표이자, 더 나은 점수를 받기 위해 고민하고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 건강정책은 단순히 기대수명의 연장과 같은 전통적 관점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틀로 전환을 해야 한다. ‘건강한 노화(Healthy ageing)’를 실현하고 ‘건강 형평성’을 높이고자 한다. 누구라도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고, 조기 발견하며, 앓더라도 금방 낫게 하는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건강한 날로 생애를 채우고, 건강하지 않은 기간을 최소화하는 정책은 고령화ㆍ저출산 시대에 의료비 절감과 근로활동기간 확장은 물론 삶의 질을 제고하는 최고의 정책이다.

이를 위해서 우선 흡연, 음주, 비만 등 전통적인 건강 위해 요인을 내실 있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2013년 기준 흡연, 음주, 비만에 의한 총 손실은 23조3000억원으로 건강보험 총 진료비의 45.8%이고, 국내 총생산 대비 1.6%에 해당한다. 비만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생애과정 접근이 가능하도록 다양하고 탄력적인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식품 양은 물론 신체활동 분야까지 유기적으로 조합된 정책을 위해서는 여러 부처 간 협업이 필요하다.

또한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건강 위해 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범부처 컨트롤타워 구축이 필요하다. 인구 고령화와 만성질환의 급증, 신종 감염병, 미세먼지, 라돈 등 발암물질, 지역ㆍ계층 간 건강격차, 주거ㆍ작업ㆍ생활 환경에서의 위해 요인, 각종 사고와 폭력, 자살에 이르기까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서로 연관되어 있다. 건강을 중심에 두고 정부 부처 간 협력을 이끌어 갈 추진 체계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리고 국민 모두가 차별 없이 기본생활을 누리는 포용적 복지국가 실현을 위해서는 빈곤ㆍ교육ㆍ주거ㆍ직업과 같은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을 고려한 새로운 개념의 건강정책이 필요하다. 이번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흡연율은 높아졌으며, 여자의 경우 소득 수준에 따른 비만, 고혈압, 당뇨병 유병률 격차가 20년 사이에 더 벌어졌다. 새로운 건강정책은 모든 정부 부처의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선정하며, 평가할 때 건강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제도화시키는 방안으로 여성가족부의 성인지 예산, 성별 영향 평가와 유사하게 건강인지제도, 건강 영향 평가 제도 도입을 우선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건강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예산과 조직 등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 시작하면 1~2년 내에 단기적 성과뿐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일자리 창출, 경제성장의 기반을 마련하고 무엇보다 국민 건강수명도 향상시킬 수 있다. 건강에 대한 투자는 사회보장 기본 틀을 세우는 마무리 작업이자, 포용적 복지국가를 완성하는 길임을 확신한다.

보건복지부 장관 박능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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