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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뜨지 않는 코리아세일페스타

입력
2019.11.03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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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세일페스타가 시작된 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쇼핑가가 외국인 관광객과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코리아세일페스타가 시작된 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쇼핑가가 외국인 관광객과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의 유명한 암산 실험이 있다. 1부터 시작해 8까지 곱했을 때와 8부터 시작해 1까지 차례로 곱했을 때 답이 상당한 차이가 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정답은 4만320이지만 이 실험에서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의 평균은 512였고, 두 번째 질문의 대답은 2,250으로 4배 이상 차이가 났다. 댄 애리얼리 미국 듀크대 교수의 실험 결과도 비슷하다. 학생들에게 한 병의 와인을 보여주고 자신의 주민번호 마지막 자리를 쓰게 한 후 얼마를 주고 와인을 살 생각이 있는지 적게 했다. 주민번호 숫자가 높은 학생일수록 더 높은 가격을 적어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런 심리를 ‘앵커링(anchoring) 효과’라고 부른다. 먼저 인지한 기준점이 이후 의사결정이나 행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가격 할인 행사에서 이런 심리를 이용한다. 똑같은 제품을 한 매장에서는 정가 5만원이지만 40% 할인해 3만원에 팔고, 다른 매장에서는 4만원인데 30% 할인해 2만8,000원에 판다고 하자. 최종 판매가는 2,000원 더 비싼데도 할인율 높은 매장에서 더 잘 팔린다. 이를 악용해 할인행사 때 정가를 높여 표시한 뒤 큰 할인율로 매출을 올리는 사례가 종종 구설에 오른다.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를 본 떠 만든 가격 할인 행사인 코리아세일페스타(코세페)가 1일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직구 바람까지 불러일으킨 블랙프라이데이와 달리 코세페의 반향은 뜨뜻미지근하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극도로 위축된 경기를 살려보려는 정부 주도 행사의 한계라거나, 추수감사절 대량 소비에 맞춘 블랙프라이데이와 달리 시기가 어중간하다는 지적도 있다. 유통회사가 주도하는 이벤트인데 미국과 달리 국내는 백화점이 직접 상품을 매입해 파는 형태가 아니라 할인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도 온ㆍ오프라인 할인 품목의 개수나 할인율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고 한다. 민간 주도 첫 코세페라지만 유통ㆍ제조업체들의 참여도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정가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고, 이미 이런저런 계기의 사실상 연중 할인행사에 길들어져 있다. 유통ㆍ제조업체들이 재고 부담을 피하기 위해 손해를 보면서라도 팔겠다며 높은 할인율을 제시할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면 코세페는 앞으로도 구호만 요란한 할인행사가 될 수 있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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