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하나은행의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피해자비대위가 1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앞에서 DLS판매 금융사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선진국 독일이 망하지만 않으면… 100% 원금이 보장됩니다.”

최근 대규모 손실 사태를 일으킨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를 판매한 은행 PB(프라이빗 뱅커)들이 고객에게 반복해 강조했다는 이 말은 앞뒤 모두 사실이 아니다.

먼저 ‘독일이 망하지 않으면’이라는 조건. 선진국 독일은 그 사이 전혀 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계 경제가 불안해지자 좀 더 안전해 보이는 독일로 돈이 너무 몰린 게 이번 사태의 역설적인 원인이다. 너도나도 사려다 보니 독일 국채금리가 0% 아래로 뚫고 내려가 심지어 연 -0.6~-0.7%까지 비정상적으로 낮아진(채권값 상승) 것이다. 정말 독일이 망할 조짐을 보였다면 반대로 채권금리가 치솟아(채권값 폭락) DLF 투자자들은 약정 수익을 모두 챙겼을 게다. 결과를 놓고 보면 이런 블랙코미디가 없다.

100% 원금이 보장된다는 말도 더는 현실이 아니다. 요즘 웬만한 유럽 선진국에서는 마이너스금리가 보편화됐다. ‘원금+이자’였던 전통의 공식이 어느새 ‘원금-이자’로 바뀌었다. 은행이 예금을 받아 만기에 보장해주는 원리금은 고객이 맡긴 돈에서 일부를 제한 ‘원금에 못 미치는’ 돈이다. 예금이 이 지경인데, 조건부로 투자하는 파생상품은 말해 뭐할까. 몇십 % 수준은커녕, 원금 ‘올인’ 사태까지 벌어졌으니 도박판이 따로 없다.

정치권과 일부 학자들 사이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은행에서 ‘고위험’ 상품을 팔지 말게 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한다. ‘눈 가리고 아웅’ 격이다. 이번 사태의 진짜 원인은 불황과 저금리에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만족할 수익을 낼 수 없으니 위험한 줄 알면서도 좀 더 높은 수익률을 찾아 모험을 거는 것이다.

만약 은행에서 이런 상품을 팔지 못하게 한다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은행 창구마다 죄다 금리 1% 안팎의 정기예금, 적금만 제시한다면? 고객들은 파생상품을 파는, 펀드를 모집하는 증권사로 발길을 옮길 것이다. 은행이나 소비자 모두 바라지 않는 그림이다.

2016년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때도 비슷한 전례가 있었다. 파생상품과 연계된 홍콩 H지수가 급락해 ELS가 대거 손실을 내자, 금융당국은 한동안 H지수 연계 상품을 아예 팔지 말라고 제한했다. 하지만 다음해 제한이 풀리자 비슷한 파생상품은 다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결국 이번에도 뾰족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 당국은 가입 과정에서 소비자 설명과 확인을 더 철저히 하라고 주문할 것이다. 하지만 그 뿐. 이번 같은 사고를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틀림없을 거라 믿었던 조건이 이번처럼 어긋나는 경우는 앞으로 더 자주 생길 테니 말이다.

DLF 피해자들은 갖은 사연으로 억울함을 호소한다. 안타깝지만 어쨌든 그들은 계약 조건을 수용하고 서명한 당사자다. 협박이나 사기가 입증되지 않는 한, 그들은 평판을 더 두려워하는 은행으로부터 일부 위로금을 받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 당국은 현재 전체의 20% 정도만 일부나마 손해배상이 가능한 불완전 판매 사례로 판단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1일 발표한 중간 검사결과에서 지금의 금융시장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정의했다. 금융업자와 소비자는 기본적으로 전문성의 차이가 난다. 둘 사이에 거래가 이뤄지려면 적어도 소비자에게 상당한 정보를 쥐어주고 자기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은행들은 “불완전한 정보로 선택을 강요 혹은 유인했다”고 당국은 밝혔다.

언제쯤이면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 수 있을까. 금융사가 서 있는 높은 운동장을 당국이 어느 정도는 깎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낮은 운동장을 높이는 건 소비자가 완성할 몫이다. 가려 듣고, 공부해야 한다. 갈수록 돈을 지키기도 어려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김용식 경제부장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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