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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 악녀, 그리고 광녀 민희진

입력
2024.05.10 04:30
수정
2024.05.10 06:2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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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현실의 적나라한 거울이다. 문학이 기록하고 증언한 여성들의 삶에 대해 쓴 책 ‘하녀’(2024)와 ‘악녀의 재구성’(2017)의 요지는 이것이다. '이 세상의 여성들은 특별한 소수를 제외하면 ‘하녀’ 아니면 ‘악녀’였으며 여전히 그렇다.'

주장과 욕망이 없을 것, 배제되고 착취당할 것, 그럼에도 희생하고 순종할 것을 요구받았다는 점에서 봉건신분제가 해체된 이후에도 여성들은 상징적으로, 잠정적으로 하녀였다. 하녀 되기를 거부하고 자아와 권력을 노골적으로 탐한 여성들은 사회 질서와 자연 섭리를 거역했다는 죄목을 쓰고 악녀 혹은 마녀로 매도된 뒤 매장당했다.

여성들은 굴욕적인 하녀도, 억울한 악녀도 되지 않으려 애썼다. 쓸모 있으면서도 너무 위협적이지는 않은, 하녀와 악녀 사이의 적당한 존재가 되기 위해 위태로운 균형을 잡으며 살아온 것이 근대 이후 여성의 역사다.

민희진은 그 프레임에서 성큼 뛰쳐나가 스스로 새로운 유형의 ‘녀’가 됐다. 미친 여자, 광녀다. 기자회견에서 민희진은 미친 사람처럼 굴었다. 화법은 상스러웠고 논리는 장황했고 차림새는 불량했다. 눈 내리깔기, 말수 줄이기, 목소리 낮추기, 눈물 참다가 흘리기, 매우 제정신으로 보이기 같은 기자회견 연출 공식을 하나도 따르지 않았다.

처음엔 자멸로 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판이 뒤집혔다. 사람들은 필터 없이 쏟아낸 민희진의 말을 끝까지 들었고 그의 처지에 공감했다. 그가 만든 걸그룹 뉴진스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어텐션’(집중)과 ‘디토’(동의)를 단 두 시간 만에 이끌어낸 건 대단한 재주였다. 거의 다 죽었다가 그는 살아났다. 최고의 쇼 비즈니스 기획자여서 가능했던 영리한 연출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토록 스펙터클한 드라마를 보며 팝콘이나 씹어 먹어선 안 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민희진과 자신이 겹쳐 보이는 사람이라면 교훈을 얻어야 한다.

①싸워야 할 때는 스스로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싸워야 승산이 있다. 민희진이 조신한 피해자를 어설프게 연기했다면 당장 죽었을 것이다. ②내가 느끼는 분노가 보편적일 경우 한껏 시끄럽게 싸워서 내 편을 만들어야 한다. 민희진의 승부처는 ‘개야비한 개저씨들’을 입에 올려 '갑 대 을'로 전선을 그은 것이었다. ③실력과 명분이 있다면 쫄지 않아도 된다. 민희진이 위기를 돌파한 건 어쨌거나 창작자의 진정성을 보여줘서였다.

민희진은 혼자의 힘으로 살아나지 않았다. 그를 지지한 자칭 민희진들의 연대가 하이브에 쏠려 있던 여론을 흔들어 그를 살렸다. 그러므로 ④억울한 사람들은 힘을 합쳐 일단 함께 싸워야 한다. 민희진들의 한판 뒤집기를 목격한 개저씨와 개줌마들은 앞으로 조금이라도 조심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교훈은 ⑤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광녀 캐릭터의 당당한 등장 자체가 시대의 변화를 되돌릴 수 없음을 가리킨다.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분노로 스스로 미친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다. 책 ‘여전히 미쳐 있는’(2021)은 금지된 방식의 글쓰기로 분노를 해소하고 세상을 바꾸려 한 페미니스트 작가들의 이야기다. “참고 견디지 마라. 만족하지 마라. 너 스스로를 구원하라.” 책은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를 인용한다. 2024년의 한국에서 민희진들이 정확히 같은 시를 썼다.


최문선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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