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의 사회민주주의 개혁 지향 분명
사회모순 극복 위한 시도 정당하지만
개혁이 무능ㆍ위선의 방패막이 안 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인식이 또다시 논란을 불렀다. 지난 16일 청와대 수보회의에서다.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월 신규 취업자가 현 정부 들어 최대치인 45만명으로 집계된 ‘8월 고용동향’과 ‘2분기 가계동향 조사’ 결과를 거론했다. 가계동향 조사에 대해서는 “모든 계층의 가계소득이 증가했고, 최저 소득층인 1분위 소득이 감소세를 멈춘 것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조국 사태로 가뜩이나 민심이 들끓는 가운데 나온 대통령의 경제 낙관론엔 반감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8월 신규 취업자 45만명 중 39만명이 60세 이상 노년층이고, 대다수가 정부의 ‘노인 일자리사업’에 따른 단기ㆍ저임금 고용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파다한 터였다. 가계소득도 그랬다. 가계 전반의 가처분소득이 감소하고, 실질 소득 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진 현실을 감안하면 “대통령이 딴 나라 얘기를 한다”는 냉소가 전혀 무리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사실 우리 경제는 긍정적 평가가 비정상적으로 느껴질 만큼 심각하다. 수출과 투자, 소비가 동반 위축세이고, 성장률 전망도 1%대까지 추락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우리 대표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낮추겠다는 섬뜩한 경고를 발했고, 국내 자산가들의 해외 이탈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현실과 괴리된 대통령의 경제 인식이 바뀌지 않고 있다면, 더 이상은 인식의 오류를 따질 게 아니라 다른 틀로 대통령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다른 틀로 보면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대통령은 “경제 상황이 좋다”고 한 게 아니라, “우리 경제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좋다’와 ‘옳다’의 차이는 크다. 경제가 좋다는 건 번영의 활력이 왕성하다는 정도의 뜻일 것이다. 반면 경제가 옳다는 건 경제 현상이 정의에 부합된다는 의미에 가깝다. 대통령의 경제 인식이 낯선 건 경제의 활력 여부보다, 경제가 정의에 부합하느냐 아니냐를 주로 따지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대통령은 애초부터 ‘정의로운 경제’의 깃발을 올렸다. 가뜩이나 양극화 문제가 글로벌 이슈로 부각됐기 때문에 정당해 보였다. 그리고 취임 이래 일관되게 소득주도성장 등 강력한 공정경제 개혁을 추진해 왔다. 나아가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민주주의’로 바꾸는 시도가 진행되고, 사회적 개입을 확대하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향해 달려왔으니, 그런 맥락에서는 대통령의 경제 인식도 오류가 아닌 셈이다.

현 정권의 개혁은 당초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수정자본주의적 개량쯤으로 이해됐다. 하지만 점차 사회민주주의로까지 나아가고 있다는 평가가 많아지고 있다. 사회주의자임을 밝힌 조국 장관 임명을 두고 한 야당 의원은 “사회주의 정부임을 공포했다”고 했고, 엊그제 블룸버그통신 칼럼에서는 현 정부를 ‘사회주의자 정부(Socialist Government)’로 규정했다.

물론 지금은 사회주의가 ‘악’인 시대가 아니다. 수정자본주의든, 사회민주주의든 고도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주의적 요소가 접목되는 건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사회주의적 개혁을 추구하거나, 현 정부가 사회민주주의적 성향을 갖는 것 자체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개혁 자체가 도그마가 되어 다른 주요 가치가 희생돼도 좋다는 식은 옳지 않다. 국민은 조국 장관을 사회주의자라 반대하는 게 아니다. 정의를 내세워온 지도층으로서 단순히 특혜를 누린 걸 넘어, 더 많은 특혜를 노리고 ‘적극적으로 비리를 저지른’ 위선 때문이다. 어떤 개혁 소명도 국민에게 그런 위선의 수용을 강제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다. 대통령의 경제 인식도 마찬가지다. 어떤 정의도 경제의 황폐화를 감수하면서까지 추구돼야 할 이유는 없다. 조 장관이 지금이라도 물러나길 바라는 것처럼, 대통령의 경제 인식도 이젠 개혁 도그마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한다. 개혁은 무능과 위선을 가리는 방패막이가 아니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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