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룽(성룡). 한국일보 자료사진

중국어권 스타인 영화배우 청룽(성룡ㆍ65)과 가수 덩리쥔(등려군ㆍ1953~1995)은 1980년대 열애설에 휩싸였다. 홍콩에서 열린 어느 음악시상식에서 청룽은 비밀 시상자로 덩리쥔에게 상을 주게 됐다. 청룽이 무대에 깜짝 등장하자 덩리쥔이 트로피를 받지 않으려고 뒷걸음질을 쳐 둘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났다. 한때 사귀다 헤어진 감정의 앙금 때문에 덩리쥔이 청룽을 피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돈 것이다. 청룽은 2015년 자서전에서 80년대 초반 덩리쥔과 교제했다고 고백했다.

□ 청룽과 덩리쥔은 스타라는 공통점을 빼면 여러 면에서 달랐다. 청룽은 홍콩의 가난한 집안 태생으로 갖은 풍파를 이겨내고 스타덤에 올랐다. 대만 출생 덩리쥔은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12세 때 데뷔한 이후 스타의 길을 계속 걸었다. 무엇보다 다른 점은 중국 공산당에 대한 생각이었다. 청룽은 1997년 홍콩의 중국 귀속 이후 친공산당 행보를 이어왔다. 덩리쥔은 1989년 텐안먼 민주화 시위를 응원하는 홍콩 음악회에서 공연하는 등 중국 민주화에 관심이 많았다. 텐안먼 시위가 유혈 진압된 후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눈물만 흘렸다고도 한다.

□ 1980년 청룽이 할리우드에 진출해 영화 ‘캐논볼’을 촬영할 때다. 미국 배우가 “얼마 전 일본에 갔는데 당신 인기가 끝내주더라”며 말을 걸었다. 청룽은 “난 일본인이 아니라 홍콩인”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범죄인 인도 협약(송환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홍콩 시위에 비판적인 청룽의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청룽은 지난 14일 중국 국영 CCTV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제 조국”이라며 “오성홍기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청룽은 중국 국정 자문기관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이기도 하다.

□ 덩리쥔은 국민당 군대 간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대만 군대 위문공연을 자주했다. 프랑스에 머물며 간호학을 공부하기도 했는데 “(중국과) 전쟁이 터지면 대만에 돌아가 간호사로 일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냉전 시절 덩리쥔의 노래는 중국에서 금지곡이었으나 죽의 장막을 넘어 큰 인기를 모았다. 200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을 맞아 관영 차이나닷컴이 실시한 인터넷 투표에서 덩리쥔은 ‘신중국 영향력 있는 문화 인물’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덩리쥔이 살아있다면 홍콩 시위를 두고 뭐라 말했을까. 만약 청룽과 결혼했다면 또 어땠을까.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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