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청사에서 데이비드 스틸웰 신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접견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미국의 억만장자인 조지 소로스와 찰스 코크가 새로운 싱크탱크를 함께 설립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이들이 누구인가. 조지 소로스는 헤지펀드계의 전설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 우익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과 진보 진영에 대한 과감한 지원 활동을 펴는 미 진보 진영의 기수다. 반면 석유 재벌 찰스 코크는 케이토연구소나 헤리티지재단 같은 보수 싱크탱크에 대한 꾸준한 지원을 통해 1970년대 베트남전 이후 와해된 보수 이데올로기 부활에 앞장서고, 공화당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수의 큰손이다.

□ 정치ㆍ경제ㆍ환경 등 주요 현안마다 대립해 온 두 부호가 의기투합한 것은 “미국을 끝없는 전쟁에 내모는 잘못된 외교를 되돌릴 새로운 외교원칙을 세우기 위해서”다. 그래서 새로 만들 싱크탱크 이름도 미국 건국 초기 평화외교 원칙을 만든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를 기리는 의미로 ‘책임 있는 국정 운영을 위한 퀸시연구소’로 정했다. 연구소 공동설립자 트리타 파르시 전 ‘이란-미국 위원회’ 의장은 “연구소가 구상하는 외교정책의 기반은 ‘Live and let live’(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살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차대전 이후 이어져 온 ‘팍스 아메리카나’ 외교가 퇴조하고 21세기형 고립주의가 되살아나는 의미심장한 신호로 보인다.

□ 그제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간 데이비드 스틸웰 신임 미 국무부 동아시아ㆍ태평양담당 차관보가 “한일 간 대화 재개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데 미국이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발언했다는 뉴스에 안도하는 자신을 보며 씁쓸함이 밀려들었다. 며칠 전 일본 산케이신문이 “한국이 울면서 미국에 갈등 중재를 요청할 생각이라면 착각”이라고 쓴 막말 사설이 내 마음을 콕 집어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 미국이 중재에 나선다고 악화일로인 한일 관계를 되돌리는 데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든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과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ㆍ중국ㆍ유럽연합 등이 견제 경쟁하는 다극 체제가 형성되면 나라 간 동맹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그 동맹은 냉전 시절처럼 블록의 리더가 동맹국에 수혜를 베푸는 관계가 아니라, 국력과 손익이 서로 비슷해야 유지되는 수평적 관계다. 일본의 경제 보복은 국제관계의 이런 변화에 대비할 기회를 준 것인지도 모른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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