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억만장자인 조지 소로스와 찰스 코크가 새로운 싱크탱크를 함께 설립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이들이 누구인가. 조지 소로스는 헤지펀드계의 전설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 우익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과 진보 진영에 대한 과감한 지원 활동을 펴는 미 진보 진영의 기수다. 반면 석유 재벌 찰스 코크는 케이토연구소나 헤리티지재단 같은 보수 싱크탱크에 대한 꾸준한 지원을 통해 1970년대 베트남전 이후 와해된 보수 이데올로기 부활에 앞장서고, 공화당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수의 큰손이다.
□ 정치ㆍ경제ㆍ환경 등 주요 현안마다 대립해 온 두 부호가 의기투합한 것은 “미국을 끝없는 전쟁에 내모는 잘못된 외교를 되돌릴 새로운 외교원칙을 세우기 위해서”다. 그래서 새로 만들 싱크탱크 이름도 미국 건국 초기 평화외교 원칙을 만든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를 기리는 의미로 ‘책임 있는 국정 운영을 위한 퀸시연구소’로 정했다. 연구소 공동설립자 트리타 파르시 전 ‘이란-미국 위원회’ 의장은 “연구소가 구상하는 외교정책의 기반은 ‘Live and let live’(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살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차대전 이후 이어져 온 ‘팍스 아메리카나’ 외교가 퇴조하고 21세기형 고립주의가 되살아나는 의미심장한 신호로 보인다.
□ 그제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간 데이비드 스틸웰 신임 미 국무부 동아시아ㆍ태평양담당 차관보가 “한일 간 대화 재개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데 미국이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발언했다는 뉴스에 안도하는 자신을 보며 씁쓸함이 밀려들었다. 며칠 전 일본 산케이신문이 “한국이 울면서 미국에 갈등 중재를 요청할 생각이라면 착각”이라고 쓴 막말 사설이 내 마음을 콕 집어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 미국이 중재에 나선다고 악화일로인 한일 관계를 되돌리는 데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든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과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ㆍ중국ㆍ유럽연합 등이 견제 경쟁하는 다극 체제가 형성되면 나라 간 동맹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그 동맹은 냉전 시절처럼 블록의 리더가 동맹국에 수혜를 베푸는 관계가 아니라, 국력과 손익이 서로 비슷해야 유지되는 수평적 관계다. 일본의 경제 보복은 국제관계의 이런 변화에 대비할 기회를 준 것인지도 모른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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