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적극적 재난 대처 노력 불구 
 WHO ‘게임중독’ 질병 분류 사안엔 침묵 
 ‘잠재적 위험’에 책임 있는 메시지 내야 
 
문재인 대통령이 5월30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헝가리 유람선 사고 관련 관계장관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제공

재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수용 양식’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크게 변했음을 느낀다. 전엔 큰 재난이 발생해도 “사고인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식의 면책기제가 작동해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때의 태만으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지경을 겪자, 사고만 나면 대통령부터 만사 제쳐두고 앞으로 나서는 게 의례적 수순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 전 고 김용균씨 유족을 직접 위로하고, 강원도 산불 진화를 야전사령관처럼 독려한 데 이어, 최근 헝가리 유람선 침몰에 결연히 나선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요즘 잇단 사고와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의 모습을 부쩍 자주 보게 되면서 왠지 다른 한쪽이 허전해지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사고나 재난보다 더 절실하게 대통령의 ‘현존’이 필요할 수도 있는 현장에서는 정작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대통령의 메시지가 필요한데도 메시지를 내지 않는 걸 말한다. 필요할 때 대통령이 보이지 않으면, 정부 부처는 혼란스럽고, 여론은 분열한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 이용 장애(게임중독)’를 질병으로 분류한 것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WHO의 게임중독 질병 분류는 게임 하는 것 자체를 질병으로 규정한 게 아니다. 지나친 게임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만을 질병으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를 질병으로 볼지에 대해서도, ‘게임 통제 능력을 잃고,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지속하는 게 12개월 이상 지속하는 경우’로 구체화했다. 부정할 수 없는 게임 이용과 관련된 병리현상에 대해 가능한 진단과 치유를 위한 길을 연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번 일은 유례없는 논란과 혼선을 빚고 있다. 게임업계는 즉각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WHO 결정의 국내 적용에 반대한다고 했다. 최고의 신성장동력인 게임산업이 망하게 됐다며 집단행동도 불사하고 있다. 국내 정신의학계가 업계 이익을 위해 움직였다고도 했고, 관련 연구를 진행해 온 정부를 비난하기도 했다. 게임산업 진흥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례적으로 WHO의 새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11)의 국내 도입을 반대하며, WHO에 이의를 제기하겠다고 나섰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WHO 결정을 수용해 국내 도입 절차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이다. 관련 의료계 등에서는 오히려 게임업계의 ‘과잉 반응’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얘기에 대해서는 수많은 임상과 연구 사례들을 제시하며 공중보건 차원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게임산업 다 죽게 됐다는 비명에 대해서는 특정 산업의 융성을 위해 국민건강에 미치는 부작용 우려를 외면해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논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급기야 복지부가 제안한 민관협의체에 문체부가 참여를 거부하는 희한한 사태까지 벌어지자 이낙연 총리가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몇 년에 걸친 논의를 통해 건전한 게임 이용문화를 정착시키되, 그동안에도 관계부처는 다양한 게임산업 발전을 위한 지원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하라”는 모호한 입장 표명에 그쳐 혼선과 갈등을 정리하지는 못했다.

게임중독 현상은 즉각 민심이 격동하는 ‘체감형 재난’은 아니지만, 부지불식간에 심화해 더 큰 사회적 피해를 일으킬 ‘잠재적 재난’ 우려가 있는 사안이다. 더욱이 문 대통령은 일찍이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그릇된 규제를 없애겠다”고 공약했고, 집권 후 대대적인 게임산업 지원책을 가동해 왔다. 따라서 지금 아무런 메시지를 내지 않으면 관련 부처든 민관협의체든 합리적 논의는커녕 대통령 눈치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논란을 무작정 방치할 게 아니라면, 문 대통령은 국민 안전을 위해 결연히 ‘탈원전’을 추진해온 가치에 입각해, 게임중독 질병 분류에 대해 책임 있는 메시지를 조속히 내주기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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