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없는 복지’로 국민 속인 과거 정부
‘전기료 인상 없다’는 文정부 약속도 위험
에너지 전환정책 속도조절론 외면 답답
성윤모 산업부장관이 지난해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에너지전환정책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정부는 정책 관철을 위해 국민을 상대로 교묘한 사탕발림을 할 때가 종종 있다. 불가피한 측면도 있고, 올바른 정책이라면 어느 정도는 ‘정치적 기술’로 봐줄 여지도 있다. 하지만 정도가 심하면 대국민 사기가 되고, 국민은 바보가 된다.

박근혜 정부 때 ‘증세 없는 복지’가 그랬다. 그때도 나름대로 진지하게 복지 확대가 추진됐다. 다만 당시의 기조는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선택적 복지’를 늘려가자는 것이었고, 그런 맥락에서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정부 씀씀이를 줄여 복지예산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은 이내 한계가 보였다. 그러자 증세를 안 했다는 모양새는 유지하면서도 실제론 세금을 더 거두는 꼼수가 동원됐다. 대표적인 게 개인 소득세 부문에서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이었고, 그 방법으로 정부는 세금을 내는 월급쟁이 1인당 연평균 약 2만원, 총 2,255억원의 세금을 더 거뒀다. 국민은 조삼모사에 속은 원숭이처럼 허탈했다.

전 정부에 속은 국민이 현 정부에선 전기료 인상에 다시 속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전기료 인상 없는 에너지 전환’ 이야기다. 애초 원자력발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늘리겠다는 ‘탈원전’ 공약이 나왔을 때부터 전기료 인상 우려가 제기됐다. 낮은 전기료를 뒷받침해 온 원전을 줄이면 전력 생산비는 그만큼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탈원전 정책에 따른 전기료 인상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 왔다. 정부가 애써 전기료 인상을 하지 않겠다는 건 전기료를 올리면 ‘전기료 인상 없는 에너지 전환’을 내건 탈원전 정책의 정당성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공언이 무색하게 전기료 인상 조짐이 사방에서 장마철 먹구름처럼 몰려오고 있는 형국이다. 당장 전년도에 4조9,532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가 지난해 2,080억원 손실로 돌아선 한전의 실적 악화만 해도 그렇다. 정부와 한전은 발전 연료비 상승이나 민간발전사로부터의 전력 구입비 증가가 실적 악화의 원인이며, 탈원전과는 무관하다고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설득력 약한 설명을 수용한다고 해도 전기료 인상 압력이 급격히 높아진 건 엄연한 현실이다. 안 그래도 한전은 “콩(원료)이 두부(전기)보다 비싸다”며 줄곧 전기료 인상 주장을 펴왔다.

최근 감사원의 전기료 누진제 개선 요구도 전기료 인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감사원의 요구는 현행 누진제에는 필수 가전이 된 에어컨 사용량이 반영되지 않아 대부분 가정에서 최저요금 구간을 적용받기 어려우니 최저요금 구간 전력 사용량을 더 늘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계에 직면한 한전이 요구를 수용하려면 최저요금 구간 전력 사용량을 늘리되, 구간별 단위 전기료를 올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기 압력 외에도 장기적으로는 4차 산업혁명과 전기차 보편화 등에 따라 전력은 공급 부족과 가격 인상 압력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원로들과의 대화에서조차 전기료 인상 우려를 완화할 탈원전 속도 조절 권고에 즉답을 피했고, 최근 나온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는 아예 원전 비중조차 빼버렸다. 이런 분위기라면 정부는 다음달로 예정된 주택용 전기요금제 개편과 그 이후 산업용 개편에서 누진제 조정이나 할인제 축소 등을 통해 실질적인 전기료 인상에 나설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 경우, 가계에는 과거의 ‘증세 없는 복지’와 같은 거짓말이 될 것이고, 산업계에는 다수 중소기업의 존폐를 가를 재앙이 되기 십상일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좋다. 적극 육성할 경우, 2030년이면 신재생에너지의 전력생산 단가가 원전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경제성이다. 유기농 두부 좋은 줄 몰라서 수입콩 두부 사먹는 것 아니지 않은가. 진실한 정부라면 전 정부 같은 거짓말을 되풀이할 게 아니라 전기료 인상을 솔직히 추진하든지,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신한울 3ㆍ4호기 건설 재개 등 전기료 인상 우려 해소를 위한 유연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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