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수산물 금수 분쟁 승리 반가운 소식
그렇다고 WTO의 위해성 인정은 아냐
자신감 토대로 검역타당성 재검토 필요
일본산 수산물 수입 대응 시민네트워크 회원들이 1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일본 후쿠시마산 방사능 수산물 수입 반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무역기구(WTO)가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 등에 반발해 한국을 상대로 일본 정부가 제기한 소송에서 사실상 한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8년이 지났지만 방사능 오염에 대한 국민 불안이 가시지 않은 상태인 데다 지난해 1심에서 한국이 패소한 터라 예상하지 않은 낭보다. 전문 인력을 보강하는 등 당국의 주도면밀한 대응이 끌어낸 결과를 반기지 않을 수 없다.

일본산 식품의 방사능 오염 가능성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문제다. 지금도 일본산 농수산물, 식품 수입 규제를 하는 곳이 23개국이나 된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방사능 오염 방지ㆍ관리로 오염도를 상당한 수준으로 낮췄다고 자부하는 일본 정부로서는 이런 규제로 자국 식재료ㆍ식품 수출길이 막히는 데 불만이 생길 만도 하다.

그러나 원전 사고 지역 농수산물에 대한 불신은 외교 문제이기에 앞서 심각한 일본 자국 내 문제다. 후쿠시마 등에서 출하되는 농수산물은 생산조합 등의 자체 방사능 검사를 거치는데, 현재 그 수치는 대부분 기준치를 넘지 않는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가 해당 지역 농수산물의 안전을 주장하는 근거다. 하지만 일본 정부나 언론의 여론조사를 보면 이런 안전 홍보와 그 근거에 대한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일본 국민 5명 중 한 사람이 여전히 후쿠시마산을 피하고 있다. 유통업자들 중에는 이런 행태가 소비자의 절반을 넘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후쿠시마 농ㆍ어민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다른 여러 선택지가 있는데 굳이 후쿠시마산을 먹지 않겠다는 이런 소비를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소송은 언감생심이다. 물론 국가 간의 무역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지만 그 역시 소송으로 문제를 풀어보려는 발상을 상책이라고 할 수 없다. 이번처럼 가뜩이나 여러 외교 사안으로 불편한 관계인 한국을 타깃 삼듯 콕 집어 소송 벌이는 행태는 양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비록 승소했더라도 우리로서는 이 분쟁을 사실에 기초해 좀 더 넓은 시야로 조감할 필요도 있다. 우선 이번 분쟁 심사에서 WTO가 일본산 수산물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느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이번 판정을 일본의 “명백한 패소”라고 한 일본 전문가는 관련 보고서에서 “상소기구의 판단은 일본이 제기한 근거를 토대로 한국의 조치가 협정 위반이라는 것을 인정하기에는 (1심인) 패널 심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요약한다. 법률심인 상소기구는 1심 판정이 요건을 갖추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는 것이다.

사고 직후보다 후쿠시마 일대의 방사능 오염이 낮아진 상태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사고 당시 일본산 식품 수입 규제 국가는 모두 51개국이었지만 지금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그중 유럽연합(EU)을 포함한 대부분은 검사증명서를 요구하는 정도다. 강력한 수입 규제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수입량도 많은 한국, 중국, 대만, 홍콩, 마카오 등 몇몇이다. 대만의 경우 정부가 해제를 적극 검토했다. 하지만 반대 여론에 밀려 결국 주민투표에 부쳐져 현상 유지 결론이 났다. 도쿄의 모든 식품ㆍ사료까지 포함하는 가장 강력한 규제를 하는 중국은 최근 니가타산 쌀 금수를 풀었다. 부쩍 가까워지는 중일 분위기를 감안할 때 6월 말 시진핑 주석의 일본 방문 때 금수 완화 추가 조치가 나올 거라는 기대가 일본에는 적지 않다.

우리 역시 원전 사고 초기만 해도 지금처럼 금수 조치가 강하지 않았다. 2013년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유출이 알려진 뒤 강화된 임시조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승소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현 수입 규제가 타당한지, 검역 강화로 보완이 가능한 부분은 없는지 검증하려는 노력이라도 보이는 것은 꽉 막힌 한일 관계를 풀어가는 실마리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제주 올레’를 따서 올레 코스를 만든 미야기현이, 디즈니랜드를 찾는 한국인이 끊이지 않는 지바현이 금수 지역인 것은 모순이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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