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주도에서 일어난 세 살 여아 사망사건을 접하고 제주도행 비행기 안에서 들떠 있었을 아이가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물론 극단적 선택에 이르기까지 엄마도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일하는 한 사람으로서 바라본 이 사건은 아동학대 사건 중 하나다. 왜냐하면 아이가 자신의 생명을 결정할 권리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모녀의 행적을 지켜보며 아이와 엄마가 번개탄을 사러 마트에 들르거나 마지막으로 바닷가로 향했을 때 누군가가 그 모녀에게 작은 관심이라도 가졌다면 아이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필자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일하며 만났던 한 아이를 통해 주위의 관심이 한 아이를 살리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하고 싶다. 지난해, 한 병원 의사로부터 학대피해가 의심되는 아이가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넘어져 다쳤다며 응급실을 방문한 아이의 한 쪽 팔에는 멍이 들어있었다. 아이의 상태를 세세히 살핀 병원관계자들은 아이의 상처가 단순히 넘어져서 생긴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신고를 받고 상담원들이 조사를 진행했는데 아이는 팔 뿐 아니라 다리, 옆구리 등 몸 곳곳에 상처가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상처에 대해 쉽사리 얘기를 하지 못했다. 팔에 생긴 멍은 친구랑 놀다가 다친 거라고 답하던 아이는 부모와 분리된 이후에야 아빠로부터 학대당한 사실을 털어 놓았다. 학대 사실을 숨기고 놀다 다친 거라고 답한 이유를 묻자 아이는 “아빠가 그렇게 말하라고 했어요”라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빠로부터 학대를 받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어쩌면 영원히 발견되지 못 하고 계속 학대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던 아이였지만 작은 상처 하나도 가볍게 보지 않고 관심을 기울여준 주변의 관심 덕분에 아이는 학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19일은 아동학대 예방의 날이다. 2014년 아동학대특례법 이후,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016년 2만9,671건으로 급증했다. 물론 아동학대 사건을 조사하고 서비스를 지원해야 하는 현장의 입장에서는 힘든 일이지만 아동학대 신고 건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보다 높아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계속 언론을 통해 오르내리는 수많은 아동학대 사건들을 접하다 보면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학대의 상황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아동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화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아동학대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 하는 경우도 많고, 아동학대를 인지했다 해도 신고를 두려워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아이의 사례를 통해 볼 때, 관심과 신고는 한 아이를 절망에서 건져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되기도 한다. 아동학대 예방의 날을 맞아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과 신고가 학대받는 아이의 한줄기 희망이며 아동학대를 근절하는 중요한 열쇠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더불어 발견된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보호하고 지원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제대로 된 인프라 구축과 지원이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싶다. 아동학대는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실천이나 이미 발생한 후에는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 지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학대피해 아동과 가족에 대한 상담, 교육 등이 제공될 수 있도록 전담하는 서비스 지원 시스템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동학대 신고가 폭발적으로 급증한 현재,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새로 신고된 사건을 조사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실정이다. 정부는 아동학대 신고와 조기발견에만 집중되는 대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대피해 아동들과 가족의 관리 및 지원으로 재학대가 일어나지 않도록 실질적인 보완책을 마련해 주기를 바란다.

배준열 전남서부권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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