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백성의 하늘은 밥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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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백성의 하늘은 밥이라 했다

입력
2017.01.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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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정국과 경제불안 기조는 위험신호

정치 오염되지 않도록 경제 격리 필요

저성장 감수하되 사회안전망 강화해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일어난 것이 고3 때인 1979년 10월 26일이었다. 당시 군 장성의 아들이던 친구 집에서 몇 개월간 신세를 지고 있을 때라 사건 당일부터 그 집안 분위기가 삼엄함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2ㆍ12사태가 터졌고, 결국 친구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다음 해에 ‘서울의 봄’과 5ㆍ18 민주화운동이 이어졌다.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전쟁을 방불케 했고, 나라가 끝장나는 듯했다.

경제도 혼란스러웠다. 1978년 말에 시작된 제2차 석유파동 여파로 민심이 요동치고 있었다. 석유파동 이후 1981년 11월까지 7회에 걸쳐 국내 석유 가격이 337%나 인상됐다. 물가도 1979년 18%, 1980년 38.9%, 1981년 22.5%로 살인적으로 폭등했다. 10%대를 훌쩍 넘었던 경제성장률이 1979년에는 6%대에 그쳤고, 1980년에는 -5%대를 기록했다. 어린 마음에도 가족의 안전과 생계가 걱정될 정도였다.

김영삼 의원 제명과 YH사건이 부마항쟁을 불러왔고 이것이 박 정권을 쓰러뜨리는 정치적 기폭제가 됐다. 여기에 경제 파탄도 유신정권 몰락의 한 축을 형성했다. 당시 재벌의 경제력 집중, 부가가치세 도입(1977년), 부동산 투기와 주택난, 실업자 양산, 극심한 소득양극화 등 경제분야 양상이 지금과 유사하게 전개됐다. 정치와 경제가 동시에 퇴락하면서 국가가 위기를 맞은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도 구조적 모순에 처한 경제와 이를 해결하지 못한 무기력한 정치가 맞물린 결과였다. 지금 역시 박정희 정권 말년이나 외환위기를 상당히 닮았다는 지적이 많다. 탄핵 정국으로 정치가 불안한 데다,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북한의 으름장도 신경에 거슬린다. 정치와 경제가 동시에 적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정치와 경제의 관계는 때론 보완적, 때론 종속적, 적대적이다.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상상 속의 동물인 ‘낭패(狼狽)’로 표현하는 이도 있다. 낭(狼)은 앞발이 길고 뒷발은 짧지만, 패(狽)는 앞발이 짧고 뒷발이 길다. 둘은 항상 같이 다녀야 제구실을 할 수 있지만, 통상 둘이 호흡이 잘 맞지 않아 ‘낭패’를 당한다는 의미이겠다.

일각에서는 지금의 상황을 ‘87체제’ 이후 30년간 계속된 정치시스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간 지속한 경제시스템의 동시 붕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탄핵정국과 경제위기 앞에서 정치와 경제시스템이 빅뱅을 일으키는 중이라는 것이다. 또 박근혜 정권의 몰락은 개발독재와 경제성장 일변도의 박정희 패러다임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주장도 일리가 없지 않다.

어쨌거나, 이럴 때는 정치에 오염되지 않도록 경제를 격리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 포퓰리즘 공약이 난무해 경제 논리를 그르칠 수 있다. 국회선진화법도 지금까지는 그런 부류다. 그래서 경제정책이 정치 상황으로부터 독립변수로 움직일 수 있도록 시스템, 혹은 경제사령탑을 구축해야 한다는 충고가 많다. 유일호 부총리도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경제는 정치와 별개의 논리와 생명력을 가진다”고 했다.

특히 경제가 어려울수록 우선순위는 한계 상황으로 몰리는 서민층을 보호하는 정책에 두어야 한다. 최근 여론조사의 흐름은 ‘저성장을 감수하되, 빈부 격차도 줄이고 분배도 고르게 하자’는 내용이 지배적이다. 사회안전망의 보완 요구도 강하다. 그래서 경제는 성장, 정치는 분배를 담당하는 측면이 있다.

북미 인디언 사회에서는 일찍이 포틀라치(potlatch)라는 의식이 있었다. 수확기가 되면 생산물을 추장에게 바치지만, 추장은 이보다 더 많은 재물을 부족원에게 넉넉하게 선물하는 과정이다. 일종의 나눔과 분배 의식이겠다. 각자 형편대로 음식물을 가지고 와서 나눠 먹는 북미지역의 포틀락(potluck) 파티가 여기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임금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의 하늘은 밥’이라 했다. 민심을 천심으로 떠받들어 민생을 챙기라는 얘기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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