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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전범 사형

입력
2016.12.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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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12.23

1947년 12월 극동군사재판 피고석의 도조 히데키. 그는 이듬해 12월 23일 교수형 당했다. 자료사진
1947년 12월 극동군사재판 피고석의 도조 히데키. 그는 이듬해 12월 23일 교수형 당했다. 자료사진

도쿄 전범재판이라 불리는 극동국제군사재판의 A급 전범으로 사형을 선고 받은 7명 교수형이 1948년 12월 23일 오전 0시 1분부터 34분간 도쿄 스가모(현 히가시이케부쿠로) 형무소에서 집행됐다.

도조 히데키(東條英機ㆍ당시 64세). 관동군 참모장을 지낸 일본 육군 대장으로 전시 내각 총리와 외무 문부 상공 군수대신을 겸직하며 진주만 공습 등 전쟁 전반을 지휘했다. “살아 포로가 되는 치욕을 당하지 말라”는 전진훈(戰陣訓)을 만들었던 그는 패전 직후 권총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 병원에서 체포됐다.

도이하라 겐지(土肥原 賢二ㆍ65세). 중국 베이징 텐진 등지서 특무기관장을 역임하며 주로 정보ㆍ공작 업무를 맡았고, 만주사변의 원인이 된 펑텐(奉天)사건을 배후 조종했다. ‘만주의 로렌스’라는 별명으로 불린 육군 대장으로 싱가포르 제7방면군 사령관도 지냈다.

히로타 고키(廣田 弘毅ㆍ70세). 교수형을 선고 받은 유일한 문관.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나와 외무대신과 총리를 지낸 일본 귀족(남작)이다.

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 征四郞ㆍ63). 육군 대장. 관동군 참모장으로 만주사변을 주도했다. 조선군 사령관을 맡기도 했다.

기무라 헤이타로(木村兵太郞ㆍ60세). 육군 대장으로 만주 사령관 버마방면군 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버마 철도를 건설하며 주민 수십 만 명을 학살, ‘버마의 도살자’라 불렸다. 말년에는 육군장관을 지냈다.

마쓰이 이와네(松井 石根ㆍ70세).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하얼빈 특무기관장을 지낸 육군 대장. 난징 공격은 주도했으나 난징대학살 당시 와병 중이었고 이후 실상을 전해 듣고 황군의 불명예라며 부하를 꾸짖었다지만, 그가 책임자였다.

무토 아키라(武藤 章ㆍ56세). 유일하게 중장 계급으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 이와네 휘하의 부참모장으로 난징대학살을 실질적으로 지휘했다. 44년 필리핀 제14방면군 참모장으로 있다가 종전을 맞아 필리핀에서 압송되었다.

미군은 전범들의 시체를 화장, 유골을 도쿄만에 버렸지만 한 변호사가 그 일부를 빼돌려 인근 사찰에 맡겨 매장했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은 1978년 처형된 전범 7명과 옥사한 7명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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