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마피아의 뿌리로 알려진 시칠리아 만종사건

입력
2016.03.30 04:40
0 0

[기억할 오늘] 3월 30일

시칠리아-나폴리 왕국으로 분리되기 전인 12세기 시칠리아 왕국 지도.
시칠리아-나폴리 왕국으로 분리되기 전인 12세기 시칠리아 왕국 지도.

시칠리아 만종사건은 13세기 말 시칠리아 왕국 카를로1세 국왕에 대항한 팔레르모 주민들의 반란이다. 프랑스 앙주가의 카를로1세는 전 왕가인 신성로마제국 호엔슈타우펜의 왕위 상속자를 물리치고 왕권을 쥔 뒤 대리 통치하며 무거운 세금을 매겨 주민들의 불만을 샀다. 시칠리아는 지중해의 중심이자 메시나 해협의 관문. 카를로 1세는 비잔틴 제국과 지중해 전체를 제패하려던 야심가였고, 그에게 시칠리아는 정복전쟁의 교두보이자 보급기지였다. 시칠리아 주민들로선 왕이 바뀌면서 하루아침에 식민지 신민이 된 셈이었다.

1282년 3월 30일, 주도 팔레르모 주민들은 성벽 밖에 모여 부활절 축제를 벌였다. 그들은 팔레르모 성령교회의 저녁 기도 종소리를 신호로 일제히 봉기, 왕성을 장악하고 한 달여 뒤 북부 항구 메시나까지 함락, 카를로1세의 함대를 괴멸시켰다. 그들은 교황에게만 복종하는 자유민임을 선언한 뒤 베네치아나 피사처럼 정치적으로 독립된 도시국가의 지위를 부여해줄 것을 교황에게 청했다.

하지만 프랑스 출신 교황 마르티노4세는 카를로1세의 왕위 복귀를 명령했고, 시칠리아 시민들은 전 왕가의 딸이자 아라곤의 왕비 콘스탄체에게 왕권 승계를 제안했다. 아라곤 왕국은 현재의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 왕비의 남편이던 국왕 페드로3세는 곧장 함대를 이끌고 팔레르모에 입성, 페드로1세로 즉위했다. 교황ㆍ프랑스 앙주 왕가와 아라곤 왕가의 전쟁은 1302년 평화조약을 맺으면서 승패 없이 끝이 났고, 시칠리아 왕국은 시칠리아 섬을 차지하고, 나머지 이탈리아 남부 지역은 나폴리 왕국이 됐다. 17~18세기 근대시민혁명과 성격은 물론 다르지만, 시칠리아는 이미 13세기에 귀족ㆍ시민 주도로 역성혁명에 성공한 셈이었다.

시칠리아 만종사건이 유명해진 것은 저 역사적 의미보다 ‘마피아(Mafia)’의 어원설에 연루되면서부터였다. 만종사건 당시 시칠리아 기사들의 맹세가 “Morte alla Francia Italia Anela(이탈리아는 열망한다, 프랑스인의 죽음을)”였는데, 그 머릿글자로 ‘Mafia’가 됐다는 거다. 물론, 훗날 누군가가 어법에도 어긋나는 저 문구를 지어냈다는 주장도 있다.

다른 주장으로는 당시 부재지주들의 사병 조직을 부르던 명칭 ‘mafie’가 어원이라는 설도 있고, 시칠리아인에게 밈(Meme)처럼 전승돼 온 관습적 규약을 ‘마피아’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관습적 정서로서의 ‘마피아’즉, 옳든 그르든 친구를 편들어 적에 대항하고 사소한 모욕에도 반드시 보복해야 한다는 건 곧 실제 마피아의 불문율이다. 기사들의 맹세설이 은근한 미화라면 마지막 설은 현실에서 전설을 연역했을 가능성이 있다. 근대 국민국가의 ‘유구한 전통’들에 대한 에릭 홉스봄의 해석처럼, 저 모든 설도 ‘만들어진 전통’일 가능성이 높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