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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지금은 2016년이잖아요”

입력
2016.01.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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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앞두고 구태 반복하는 정치

‘관제 서명운동’에 나선 대통령

시민ㆍ유권자의 힘으로 바꿔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8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판교역 광장에서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서명운동본부가 추진하는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촉구하는 서명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8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판교역 광장에서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서명운동본부가 추진하는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촉구하는 서명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래도 뭐라도 달라졌겠죠? 20년이 지났는데….” 지난 주말 ‘응답하라1988’ 마지막회에 이어진 후속작 ‘시그널’ 예고편에 나온 대사다. 저 말을 뱉어내는 낯익은 배우의 표정이 어찌나 절박한지, 맥락도 모르는 대사 한마디에 그만 울컥했다. 찾아 보니 장기 미제 사건을 시간을 넘나드는 미스터리 기법으로 풀어낸 수사물이란다. 결말은 알 수 없으나 응당 뭐라도 달라졌으리라는 기대를 한껏 배반하는 참혹한 현실이 펼쳐질 것이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신념까진 아니어도, 속절없이 비틀거리고 때론 한참 뒷걸음질하더라도 꿈틀꿈틀 배밀이라도 하면서 시나브로 세상은 나아져 왔고, 그렇게 나아지리라 나는 믿어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앙상한 낙관을 붙들고 있는 것조차 힘에 부친다. 우리가 지금 서기 몇 년도를 살고 있는지 되묻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로 가득한 신문 지면들을 보고 있자면, 몹시 비겁하게도 묻고 따지고 기록하는 본분마저 내려놓고 싶어진다.

20대 총선이 목전에 닥쳤다. 너나없이 염치 내던지고 민낯을 드러내는 계절이다. 지리멸렬한 야당의 이유도, 목적도 분명치 않은 세포분열, 망국적 지역주의에 기댄 헐뜯기 공방, 셋방 빼기보다 더 간단한 당적 바꾸기와 지역구 옮기기…. 너무 익숙해 지적하기도 민망한 정치판의 구태들이 어김없이 재연됐다. 여권은 한술 더 뜬다. 무슨 “박, 박, 박 자로 끝나는 말은~” 놀이도 아니고 숱한 ‘○박’을 쏟아내더니, 이젠 ‘친박’을 넘어 ‘진박(진실한 친박)’을 자처하며 인증샷 놀음까지 하니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정치판의 그 어떤 구태도 대통령이 주연을 자처한 최신 드라마가 낳은 파문에는 비할 바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18일 재계가 주도하는 ‘민생 구하기 입법 촉구 1,000만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앞서 13일 대국민담화에서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 처리를 위해 “국민이 나서 달라”는 호소에 화답하듯 재계가 서명운동에 나서자, 친히 거리로 나가 서명지에 이름을 적었다. ‘관제 서명운동’이란 비판이 쏟아졌지만, 예상대로 혹은 각본대로 ‘진실한 장관’들, ‘진실한 기업인’들, ‘진실한 국민’들이 그 뒤를 따랐다. 여당 원내대표를 내치고 국회의장과 대립각을 세워가며 국회를 흔드는 것도 모자라 이젠 아예 무시하기로 작정한 대통령 앞에서, 수모를 견디고 마라톤협상에 매달리며 야당을 설득한 선진국 정상들을 언급하는 건 부질없어 보인다.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 펴낸 ‘윌리엄 더글라스 평전’을 보면, 더글라스 미 대법관이 전란 중인 1952년 9월 방한해 이승만 대통령을 만난 일화가 나온다. 36년간 대법관을 지내며 늘 약자의 편에 섰던 그는 나라를 살릴 비전도, 정책도, 소신도 없이 무언가를 탓하는 이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그 자신이 바로 정부이며, 자신의 힘을 가지고 있고 자신이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어떤 외부세력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기대하는 듯했다.” 이 대목에서 오늘의 대한민국 현실을 떠올렸다면 지나칠까.

청년세대가 자신의 나라를 ‘헬조선’이라 일컫고 ‘금수저-흙수저’ 논란에 자괴하는 현실을 두고도 도무지 달라지지 않는 정치판과 시간을 거슬러 낡은 역사를 무시로 리메이크하는 대통령을 어찌해야 할까. 참 물색 없게 들리겠지만, 그래도 기대와 희망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동원된 ‘국민’이 아닌 ‘시민’이자 ‘유권자’로서 우리에겐 무너지는 공동체를 살릴 의무가 있고, 나아가 낡은 정치에 틈을 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이번 총선에선 뻔한 ‘○○ 심판론’을 걷어치우고, 지금은 작고 힘이 없더라도 이 사회를 조금이나마 밝게 해줄 정책을 고민하는 정당과 정치인에게 관심과 표를 던졌으면 한다.

지난해 당선 직후 내각을 남녀 절반씩에 다인종, 다계층으로 구성해 화제를 모았던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지금은 2015년이잖아요(Because it’s 2015).” 저 군더더기 없이 명징한 문장을, 냉소에 젖어있는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때다. “지금은 2016년이잖아요.”

이희정 디지털부문장 ja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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